전국이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파악한 전국의 가뭄 면적은 8일 현재 19만7000ha. 저수율이 30% 미만인 저수지도 전국적으로 552곳에 이르고, 이 중 110곳은 이미 농업용수가 고갈됐다.
강수량이 평년의 16%에 불과한 충남지역은 특히 심각하다. 7일 찾은 충남 당진·서산·태안 일대 들녘에서는 농민들의 웃음조차 메말랐다. ‘올해 농사를 망쳤다’는 절박함 탓에 넉넉했던 농심(農心)도 타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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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등 된 논바닥… 가뭄 때문에 모내기를 하지 못한 논이 물기 하나 없이 메말라 있다. 오현태 기자 |
강철구(75)씨는 자꾸 하늘만 올려다봤다. “모내기 날짜도 다 잡아놨었지….” 충남 당진시 대덕동 6600여㎡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강씨는 아직까지 모 한 포기도 심지 못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모내기 날짜를 잡아놨었다”며 “비가 오지 않아 심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논의 흙은 말라비틀어져 ‘뽀얀 먼지’만 날리고 있었다.
그의 논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실개천이 있다. 평소 물을 끌어쓰던 이곳도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물이 흘렀던 자리 양 옆으로 잡초만 무성했다. 언뜻 보면 논 옆에 나 있는 오솔길로 착각할 정도다. 하천을 건너는 다리가 그곳이 개천임을 알려준다.
강씨는 “위쪽 동네인 순성면에서 삽교천 물을 넘겨주면 모내기를 할 수 있지만 그쪽도 사정이 좋지 않아 물이 넘어오길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50가마를 수확해 800여만원의 수입을 올렸지만 올해는 빈손으로 가을을 맞아야 할 처지다. 논농사는 강씨의 ‘1년 수입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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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기 거품 가뭄이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간척지에 조성된 논은 땅 속에서 올라오는 소금기로 인해 심어 놓은 모가 타들어가고 있다. 하얀 거품이 소금기다. 오현태 기자 |
어렵게 모내기를 했어도 시름이 깊기는 마찬가지다. 논을 바라보는 충남 서산의 ‘40년 농사꾼’ 임양운(58)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논 바닥 여기저기에 하얀 거품들이 퍼져 있었다. “저게 다 땅에서 소금기가 올라와서 그런 거예요.”
임씨가 벼를 심어야 할 논은 모두 16만5300여㎡. 이 중에서 25% 정도 모내기를 완료했지만 이마저 사정이 좋지 않다. 간척지 위에 조성된 탓에 심한 가뭄으로 바닥에서 소금기가 올라오기 시작한 것. 심은 지 한 달이 안 된 모가 뿌리부터 노랗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임씨는 “이슬비가 조금만 내려도 거품이 싹 가실 텐데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다”며 “빗물에는 질소 성분이 포함돼 있어 비료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이마 주름이 논의 갈라진 틈보다 더 깊고 선명했다. 그렇다고 마냥 하늘만 바라볼 수는 없었다. “심은 벼라도 살려야죠.”
6월 들어서도 비가 내리지 않자 임씨는 남은 논의 모내기를 포기했다. 대신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모를 심은 논에 물을 대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하루 종일 호스를 끌고 다니는 것이 일이다. 그러나 절망적이다. 급할 때 끌어 쓰는 개인 소유의 ‘소형 담수지’ 5곳도 4∼5일 후면 바닥이 난다고 한다.
가뭄은 동네 주민들도 갈라놨다. 임씨의 부인 김복진(56)씨는 “사람들이 자기네 논 근처에 있는 곳에서 물을 끌어가려고 하면 못하게 한다”며 “동네 인심도 가뭄과 함께 말라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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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입니다” 충남 당진시 대덕동 강철구(75)씨가 바닥을 드러낸 개천을 바라보며 가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풀 사이로 보이는 것이 물길이다. 오현태 기자 |
저수지는 하루가 다르게 수위가 낮아지고 있었다. 이날 오후 찾은 서산의 ‘대호담수호’는 가장자리부터 10m 정도가 ‘맨바닥’이었다. 저수지 안쪽의 물과 배수로를 이어주기 위해 굴착기가 말라버린 땅을 파내고 있었다. 주변 농지 7700만㎡의 ‘젖줄’인 이곳의 현재 담수량은 648만t. 유효저수량(4640만t)의 14% 수준이다.
전국 저수지를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는 각 지사로 임원들을 급파해 24시간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다. 김일구 농어촌공사 서산지사장은 “하루 평균 57만t의 물이 줄어들고 있다”며 “이 상태라면 20일쯤 농업용수 공급을 중단해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8일 이곳에는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으나 강수량은 5㎜도 안 됐다. 가뭄 해갈에 필요한 양은 최소 50∼100㎜다.
당진·서산·태안=오현태 기자 sht9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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