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야구선수 윤찬수도… “선수 육성 시스템 문제” 지적 한때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던 전직 유명 운동선수가 서울 한복판에서 부녀자 납치극을 벌이다 쇠고랑을 찼다. 쉽게 ‘한탕’을 꿈꾸는 욕심이 근본 원인이지만, 운동에만 ‘올인’하도록 몰아붙이는 체육계의 선수 육성 구조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강남구 청담동의 한 빌라 주차장에서 부녀자 박모(45)씨를 납치해 달아난 혐의(특수강도 등)로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김동현(28·사진)씨와 전직 야구선수 윤찬수(26)씨를 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5월 프로축구 승부조작 파문의 핵심 인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축구계에서 영구 제명된 인물이다.
한양대 동문이자 국군체육부대 선후배인 이들은 지난 5월 중순부터 김씨 집에서 숙식하며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지난 26일 오전 2시20분쯤 강남구 청담동의 빌라 주차장에서 벤츠 차량을 타고 귀가하던 박씨를 타깃으로 삼았다. 윤씨가 인근에서 훔친 투싼 차량에서 망을 보고 있는 사이 김씨는 차에서 내리려는 박씨를 흉기로 위협해 조수석으로 밀어넣고 벤츠 차량과 함께 통째로 납치했다.
납치극은 20분 만에 싱겁게 끝났다. 훔친 차량으로 옮겨타려고 김씨가 벤츠의 속도를 늦추자 박씨가 잽싸게 탈출해 버린 것. 이때부터 이들의 치밀한 범죄계획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피해자가 탈출하자 당황한 윤씨는 투싼 차량을 버리고 달아났고, 강남구 청담동 영동고등학교 앞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김씨는 윤씨가 버리고 간 투싼을 몰고 태연하게 강남경찰서 앞까지 찾아와 경찰의 동정을 살피다가 검거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운동만 하다 보니 범행이 치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경찰에서 “김씨가 사업을 하려고 1억원을 금융권에서 빌렸으나 이자를 감당하기 힘들어 범행에 나섰다”고 진술했다.

프로 운동선수 출신들의 거듭하는 범죄행각을 두고 전문가들은 오로지 운동에만 전념하도록 다그치는 선수 육성 구조도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공부·또래로부터 차단된 상황에서 운동만 강요받다 보니 벌어놓은 것도 없는 20∼30대에 은퇴하거나 퇴출되면 딱히 자리 잡을 수 있는 곳이 없어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
최근 1980년대 씨름판에서 천하장사로 이름을 떨친 이준희(55)씨가 노인들을 상대로 건강보조 식품을 만병통치약으로 속여 팔다가 경찰에 입건됐다. 또 프로 권투선수가 조폭과 짜고 마약을 밀반입하다 적발되는 등 전직 프로 선수들의 범죄행각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대 권순용 교수는 “운동에만 몰입하게 하는 현 시스템에서 비롯된 문제”라며 “운동 선수들이 공부와 사회능력을 기를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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