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한지’ 촬영하면서 3kg나 쪘어요. 맘 편하게 먹고 연기하니 살이 붙더라고요.”
청순가련의 대명사 정려원이 SBS ‘샐러리맨 초한지’로 시청자들에게 한층 편안하게 다가왔다. ‘초한지’를 간만의 흥행작에 올려놓으며 흥행 여배우 대열에 합류한 정려원에게서 인터뷰 내내 밝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초한지’에서 정려원은 천하그룹 진시황 회장의 천방지축 외손녀 백여치 역을 맡아 연기 변신을 꾀했다. 음주 연기는 기본, 적나라한 욕설 대사로 ‘음소거녀’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욕 비슷한 말을 찾아봤어요. 대본에 'XXX XXX'라고 나오면 그때마다 연구했죠. ‘삐리리’라고 처리되도 항상 같은 욕을 할 순 없었으니까요. 사실 선배 배우들 앞에서 욕설 연기가 너무 민망했어요. 뻔뻔하게 하라는 선배님 말씀에 힘을 얻었죠.”
백여치의 옷을 입은 정려원은 기존 시한부 혹은 내면의 상처를 지닌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면서 얼굴에 드리워졌던 그늘을 완벽히 벗겨낸 느낌이다. 그만큼 정려원의 연기 인생에 백여치는 특별한 의미일 터.
“모든 캐릭터가 소중하지만 여치는 굉장한 임팩트로 다가왔어요. 여치는 손에 꼽을 만큼 애착 가는 캐릭터였다. 족보에 없던 친구가 툭 튀어나온 느낌이랄까요? 생명력 강한 여치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예요.”

정려원은 백여치 캐릭터를 통해 안하무인, 막무가내부터 진시황 회장 사후 진지한 연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한 캐릭터 안에 여러 모습을 담아내는 과정이 어렵진 않았을까.
“백여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천방지축 모습도 있고 한 기업의 운명을 짊어진, 막중한 책임감을 가진 캐릭터잖아요. 극과 극을 오갈 때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걱정됐어요. 캐릭터를 표현하는 어려움보다 백여치를 이해하는 어려움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세상 물정 모르던 여치가 노숙을 끝낸 후 세상에 눈 뜨게 된 5,6부 정도 되니 어느 정도 캐릭터 분석이 되더라고요. 여치의 이전 철없는 행동이 알면서 그랬다면 용서가 안됐겠지만 몰랐으니 변화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시청자들도 이해해 주실 것 같았죠.”
정려원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영화 ‘통증’ ‘네버엔딩 스토리’ 등을 통해 병자 이미지로 대중의 뇌리를 지배했다. “사실 아프지 않은 역할이 더 많았다”며 잠시 억울한 표정을 지은 정려원은 “아픈 역할이라도 촬영할 땐 항상 밝았고, ‘초한지’에서는 좀더 밝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피곤하지 않냐’고 할 정도로 웃고 다녔어요. 재미있게 찍어서 그런지 긍정적인 에너지가 마구 발산됐던 것 같아요. 함께 작업한 배우들의 기운이 좋아서인지 신나게 무척 밝고 신나게 연기했어요.”
시청자들은 그간 예쁘고 착하게마 그려졌던 여느 여주인공과는 다른 백여치에 열광했다. 정려원은 백여치의 인기 비결을 “시청자들이 새로움에 목말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샐러리맨을 다룬 이야기가 새로울 건 없는데 시청자들이 사랑해 주신 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새로웠기 때문이 아닐까요. 판타지에 머물 수 있는 인물과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그려지기도 했고요. 완벽해 보이지만 허당 기질이 있는 캐릭터를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요. 캐릭터에 동경이 아닌 공감을 해주셨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모습으로 시청자와 마주한 정려원, 첫 도전하는 코믹 연기에 시청자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지만 ‘배우’로서 아쉬움이 남을 만하다. 하지만 정려원은 코믹 변신에 대해 “후회는 없다”며 만족스런 자체 평가를 내놨다.
“저는 성공의 기준을 ‘최선을 다했나’ 여부에 둬요. 사람들의 시선은 취향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거니까요. 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치를 최대한 소비해 후회 없을 만큼 연기했나…, 뒤돌아보면 열심히 했다고 칭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치 캐릭터에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란 없죠. 이전 작품에선 ‘좀더 열심히 할걸’이라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았다면 이번엔 제 모습을 다 보여드린 것 같아 시원하기도 하고요.”
정려원은 히트작이 많지 않음에도 그녀만의 분위기로 끊임없이 다양한 작품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뚜렷한 흥행작이 없다는 사실에 조바심이 날만도 하건만 정려원은 “히트작이 많아도 기쁘게 찍은 작품이 없다면 그 또한 슬픈 일”이라며 “돌아봤을 때 부끄러운 작품은 없었다. 나는 행복한 배우”라고 미소 지었다. 정려원의 필모그래피에 흥행과 연기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초한지’는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
“‘초한지’를 통해 두려움을 스스로 많이 깨뜨릴 수 있었어요. 새로운 캐릭터가 어색하긴 했지만 그로 인해 성장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어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 의미를 두자는 맘으로 작품을 선택했는데 이렇게 좋아해주시기까지 하니 보너스 탔어요.”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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