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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봉투 추궁에… 박희태 "기억이 희미하다"

관련이슈 정치권 '전당대회 돈봉투' 파문

입력 : 2012-01-18 23:29:44 수정 : 2012-01-18 23: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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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일이라 기억 희미… 모른다"
여야 '박희태 희생양'에도 불쾌
18일 오전 6시20분쯤 인천공항 의전실에 모습을 드러낸 박희태 국회의장은 수척해보였다. 열흘간의 해외 순방 내내 따라다닌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의 꼬리 탓에 겪었을 마음고생이 묻어났다.

박 의장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소정의 책임’, ‘사죄’, ‘불출마’를 언급하며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의 ‘불명예 퇴진’ 압박은 물리쳤다. 2008년 전대 당시 ‘돈봉투 살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나올 때까지 의장직을 내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입법부 수장 자리에까지 오른 ‘노정객(老政客)’이 명예를 건 결기를 드러낸 셈이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돈봉투 사건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인천공항=김범준 기자
◆버티는 박희태, “기억이 희미하다”


박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잘 아시다시피 이 사건은 발생한 지 4년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기억이 희미할 뿐 아니라 당시 중요한 5개의 선거를 몇 달 간격으로 치렀다”며 “연속된 선거와 4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제가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내막을 잘 모르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아직까지 박 의장과 돈봉투 살포의 연결고리가 드러나지 않은 만큼 도망치듯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기억이 희미하다’는 말은 불법자금 수수사건과 관련해 의혹을 받는 정치인이 애용하는 방어용 표현이다. ‘물증’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도 작용한 듯하다.

박 의장의 최측근 인사는 기자와 만나 “고승덕 의원의 일방적인 진술 말고는 국회의장이 돈봉투 살포와 관련 있다고 뭐 하나 나온 게 있느냐”며 “이 상황에서 박 의장이 물러나면 국민들은 ‘뭔가 있으니 저러겠지’ 할 것이다. 검찰수사를 보고 거취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여야의 용퇴 압박 의도가 불순하다고 여기는 점도 박 의장이 버티는 배경으로 풀이된다.

한 측근은 “솔직히 전대 ‘돈 경선’ 논란에서 자유로운 여야 정당이나 정치인이 어딨냐”며 “정치권이 박희태를 희생양 삼아 돈봉투 논란을 피해가려 한다”고 지적했다.

◆밀어내는 한나라당, “알아서 물러나달라”

한나라당은 당혹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박 의장 거취를 설 연휴 이전에 정리해 돈봉투 쓰나미의 파장을 최소화하려던 계획이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국의 ‘설 밥상’에 ‘박근혜 비대위’의 쇄신그림 대신 돈봉투 사건이 차려져 여당에 불리한 여론이 조성될 공산이 커졌다. 더구나 검찰이 현직 국회의장을 직접 상대하는 데 대한 부담을 느껴 수사가 늘어질 수 있다.

쇄신작업을 조기에 매듭짓고 총선체제에 전념해야 할 여당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박 의장은 물론 당시 친이(친이명박)계를 중심으로 박희태 캠프에서 활약한 인사들이 장기간 수사선상에 오르내리면 당력을 모으기가 어렵다. 이날 당 차원에서 박 의장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보인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선봉에 섰다. 박 위원장은 비상대책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검찰수사가 장기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조속히 실체가 규명될 수 있도록 관련자들은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속하고 철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며 에둘러 박 의장을 압박한 것이다. 정몽준 전 대표도 “수사가 장기화되면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된다. 사건 관련자들은 검찰에 다 출석해 협조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한나라당은 다만 야당이 제출한 의장직 사퇴 촉구 결의안에는 동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당 대표까지 지낸 ‘친정 원로’에게 불명예 퇴진을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게 껄끄러워서다. 한 고위 당직자는 “우리가 야당처럼 할 수는 없잖냐. 의장 본인이 알아서 잘 판단해주시길 바랄 뿐”이라고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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