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억 원이 넘는 재산을 한 대학에 기부하겠다는 자필 유언장에 도장이 찍혀 있지 않았다면 그 재산은 대학과 유족 가운데 누가 가져야 할까.
몇 년 전, 120억 원이 넘는 유산을 대학에 기부하겠다는 유언장의 효력을 놓고 한 대학과 유족이 벌인 소송에서 법원이 유족의 손을 들어준 판례가 있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민사 28부는 사회사업가였던 고 김 씨의 유족들이 은행에 맡겨져 있는 김 씨의 예금을 돌려달라며 낸 소송에서 은행은 유족에게 상속금액 123억원을 모두 내주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김 씨의 유산은 한 대학에 기부한다는 자필 유언장과 함께 은행에 맡겨져 있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자필 유언장이라도 서명을 하고 도장을 찍지 않았다면 효력을 인정할 수 없어 고인이 대학에 재산을 줬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고인이 유언장을 대여금고에 둔 채 숨진 만큼 대학 측과 증여계약이 성립됐다고 볼 수 없으며 고인이 과거 120만원의 장학금을 기부한 것 외에 대학과의 특별한 교류가 없었던 점도 감안한 것이다.
유언의 법적효력, 누가ㆍ어떻게ㆍ누구와?
법적인 의미의 유언이란 유언자가 유언능력을 갖추고 법적 사항에 대해 엄격한 방식에 따라 하는 행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가족이나 친지에게 남기는 말이나 당부 등을 유언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는 법적 효력을 갖는 법적인 의미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유언에 엄격한 방식을 요하는 것은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를 명확히 하여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므로, 법이 정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언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해야 법적효력이 있을까. 큰 맥락만 설명하자면 이렇다.
1. 만 17세에 달한 의사능력이 있는 자. (※ 여기서 의사능력이란? 의사능력이란 자신의 행위나 의미의 결과를 정상적인 인식력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 내지는 지능을 말한다. [대법원 2002.10.11. 선고 2001다10113 판결 참조]).
2. 유언은 「민법」에서 정한 가족관계ㆍ재산의 처분ㆍ상속ㆍ유언의 집행에 관한 사항에 한해 할 수 있기 때문에 법에서 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 유언자가 「민법」의 방식에 따른 유언을 하더라도 그 내용은 효력이 없다.
3. 상속재산의 분할방법의 지정 및 위탁은 피상속인이 유언으로 상속재산의 분할방법을 정하거나 이를 정할 것을 제3자에게 위탁할 수 있으며 유언으로 상속개시의 날로부터 5년을 초과하지 않은 기간 내의 그 분할을 금지할 수 있다.(「민법」 제1012조).
4. 유언은 법에서 정한 방식에 따라 이루어져야 그 효력이 인정된다. 민법에서는 유언을 5가지 방식으로 정하고 있으며, 그 방식은 다음과 같다.
◎ 자필증서유언 - 유언자가 직접 자필로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녹음유언 -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 그 성명과 연월일을 구술하고 이에 참여한 증인이 유언의 정확함과 그 성명을 구술하는 방식의 유언을 말한다.
◎공정증서유언 - 유언자가 증인 2명이 참여한 공증인의 면전에서 유언의 취지를 구수하고 공증인이 이를 필기낭독하여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는 방식의 유언을 말한다.
◎비밀증서유언 - 유언자가 필자의 성명을 기입한 증서를 엄봉날인하고 이를 2명 이상의 증인의 면전에 제출하여 자기의 유언서임을 표시한 후, 그 봉서표면에 제출 연월일을 기재하고 유언자와 증인이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는 방식의 유언을 말한다.
◎구수증서유언 - 질병 그 밖에 급박한 사유로 인하여 다른 방식에 따라 유언할 수 없는 경우에 유언자가 2명 이상 증인의 참여로 그 1명에게 유언의 취지를 구수하고 그 구수를 받은 자가 이를 필기낭독하여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는 방식의 유언을 말한다.
※ 위의 사항들은 녹음유언 1명 이상, 공정증서 유언 2명 이상, 비밀증서유언 2명 이상, 구수증서유언 2명 이상의 증인을 섭외ㆍ확보하여야 한다.
유언에 의한 상속이라 하면, 어느 정도 재산규모가 있는 부호들만이 필요한 것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산규모에 관계없이 유언장을 미리 작성해 놓는 경우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무심코 빠뜨린 날인 하나가 훗날 상속인들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으므로 법적효력을 발휘하는 유언장에 대해 반드시 유념하여야 한다.
▽홍순기 변호사
1985 국민대학교 법학과 졸업
1986 사법연수원 수료
1987 국민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석사과정(회사법 전공), 박사과정(조세법 전공)
1990 육군본부, 국방부 군판사
1993 국방부 검찰부장
1995 변호사 개업(서울지방변호사회)
1998 법무법인 한중 설립
~(현) 법무법인 한중 대표변호사
1998~(현) 용산전자상가, 크라운제과, ABC상사 등 다수 회사 고문변호사
2001~(현) 보건복지부 의사상자심사위원회, 정보공개심의위원회 등 위원
2004~(현) 용산구청 고문변호사, 인사위원회, 분쟁조정위원회 등 위원
2009~(현) 경기도시공사, 인천지하철공사, 대한전문건설협회 등 고문변호사
2010~(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 도움말: 법무법인 한중 홍순기 변호사 www.hj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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