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걸은 거예요?”
“한 25킬로미터쯤이요.”

설마.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진 긴 산행이지만 그렇게 많이 걸었을 리 없다. 해발 1,720미터 위 고산 마을을 출발해서 2,500미터 산고개로 이어진 트래킹은 내 생에 두 번째 경험하는 고산 트래킹이다. 첫 번째는 하바설산과 위룽쉐산의 갈라진 틈 새로 진사강이 흐르는 16킬로미터 협곡, 호도협을 1박 2일에 걸쳐 걸었다. 오늘의 태자관 패스는 호도협보다 해발고도가 높고 경사도 더 심해서 걷고 쉬고를 밥 먹듯 반복했다.
아줌마가 첫날을 무사히 마친 내게 용기를 북돋아 주려는 모양이다. 그래서 3~5킬로미터를 보너스 포인트로 더 지급한 것 같다. 평소 내 보폭으로 추측컨대, 많이 걸었댔자 20~22킬로미터쯤 걸었을 거다. 그런데! 20킬로미터 넘게 걸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피로가 휘몰아친다.
“숙소에 도착하면 얼른 씻고 대자로 눕고 싶어요.”
“물을 데우면 세수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예요.”
고작 세수라고? 온몸에서 나는 이 쉰내는 어쩌라고. 땀에 흠뻑 절었다가 마른 옷은 군데군데가 허옇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아줌마와 내가 걸어온 길이 어땠는가. 오지 중에서도 깊은 오지. 핸드폰 신호조차 흐릿했다. 8시간가량 이어진 산행에서 만난 사람은 고작 열 명. 인적이 드물어서 중국이라면 어디나 흔한 음료수 병이며 과자봉지 같은 쓰레기조차 극히 드물었다. 길에 남겨진 자취라고는 말라비틀어진 염소와 나귀의 똥, 그 위를 윙윙 맴도는 날파리 떼가 반가울 정도다. 그러니 세수하고 발 뻗고 잘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어깨를 파고들던 배낭을 곧 내려놓는다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하다.

푸른 산골짜기 사이로 마을이 보인다. 30여 채도 되지 않는 통나무 가옥이 산허리에 드문드문 걸쳐 있다. 아줌마와 내가 하룻밤 머물고 갈 류칭(柳靑)이란 마을이다. 문득 엉클 톰의 오두막집이 떠오른다. 보기에는 좀 초라해도 사람 온기 품은 그 안은 무척 따뜻할 거야.
이를 어쩐다. 주인이 집을 비웠다. 우리가 머물 집 대문에 자물쇠가 굳게 잠겨 있다. 주인과 전화통화를 하려고 아줌마는 고군분투 중. 이리지리 자리를 옮기며 핸드폰 신호를 잡느라 애쓴다. 수차례 시도 끝에 드디어 성공. 잠시 친정에 다니러 간 집주인은 30분 내로 달려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서둘러 오느라 얼굴이 붉게 상기된 긴 생머리의 여주인. 내가 “니 하오.” 하고 인사를 건네자 불타는 고구마처럼 얼굴이 더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정면으로 눈을 마주보며 인사하지 못하고 새색시처럼 부끄럼을 탄다. 모기만한 목소리로 “니 하오.” 인사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산골 마을처럼 순박한 여주인이 단박에 좋아진다.
대문을 열자 외출에서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한 무리. 아니, 주인이 오거나 말거나 모이 쪼는데 열중한 암탉과 수탉이 마당 가득이다. 거위만큼 비대한 녀석들이 나는 무서워 멈칫. 세상에서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동물은 뱀도 아니고 여우, 사자, 호랑이도 아닌 닭이다. 아무래도 전생에 나는 지렁이였나 보다. 닭의 붉은 벼슬이나 주억거리는 얼굴, 눈곱만큼 작은 닭의 눈동자만 보아도 얼음이 되고 만다. 동태가 되고 만다.
아줌마가 닭을 휘휘 쫓아주고야 나는 마당에 발을 들여놓았다. ‘ㄷ’자를 시계방향으로 90도 돌린 형태의 가옥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넓었다. 정중앙에는 커다란 부엌이, 왼편에는 가족이 생활하는 방들이, 오른편 이층 건물에는 주로 손님이 머무는 방이 네 칸이나 있다. 부엌 옆 마당 한켠에 딱딱 열 맞춰 정리해놓은 늙은 호박이 탐스럽다. 여주인의 깔끔한 성격이 엿보인다. 여주인을 따라 들어간 부엌은 우리네 시골집 부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부뚜막에 대형 가마솥 2개가 걸려 있다. 그 옆에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쓰는지, 대형 나무수조가 부뚜막의 그을음을 타고 검게 변해 있다. 우리 할머니가 아침저녁 반드르르 윤나게 닦던 나무 찬장도 보인다.
알고 보니 나시족의 부엌은 ‘거실’이기도 하다. 부엌 맨 안쪽 화덕을 중심으로 가족의 일상이 이뤄진다. 가족이 화덕에 빙 둘러앉아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손님이 오면 차를 마시고, 아이를 키울 때는 따스한 침실이 되기도 한다. 나도 화덕에 앉아 손님대접 거하게 받았다.
여주인이 얼른 화덕에 불부터 지핀다. 그 위에 커다란 주전자를 올려 물을 끓인다. 그리고 찬장에서 쿠키와 수유버터, 찻잎을 내왔다. 화롯불 가장자리에다 미니주전자를 또 하나 올리고 거기에다 찻잎을 넣어 은근히 우려낸 후 수유버터를 한 숟가락 퍼 넣는다. 그리고 광에서 알이 굵은 감자 다섯 개를 꺼내와 도톰하게 썰어 화로에 굽는다. 꼬치꼬치 캐묻는 어린아이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관찰하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여주인이 배시시 웃는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데. 나는 나시어를 모르니 꿀 먹은 벙어리 신세다. 아줌마와 여주인은 쉴 새 없이 나시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형님네 스토우청 가족들은 다덜 무고허시죠잉?”, “동상은 이 산골에서 우찌 지냈는가?” 뭐, 이런 이야기 아니겠나.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유심히 듣고 표정을 지켜보는 것만도 무척 재미있다.
사실,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한 점은 없다. 진짜다. 나시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 오히려 좋다. 나침반이 되어주는 아줌마가 있어서 산길 걸을 땐 든든하지만 앞서 걷는 아줌마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뒤에서 혼자 뚜벅뚜벅 걸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했던 도보여행이다. 동행은 있으나 의사소통의 의무는 깃털처럼 가벼운 여행. 첫날이라서 온 신경을 걷는 데에 집중하느라 많은 생각을 하진 못했지만, 내일부터 스쳐가는 풍경도 차츰 더 잘 보일 것이고, 지난날의 나를 되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산속의 해는 일찍 기울었다. 안 그래도 어두침침한 부엌이 더 안 보인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고양이세수라도 해둬야지. 그 틈에 아줌마와 여주인은 좀더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여주인에게 뜨거운 물이 담긴 마호병을 건네받아 마당으로 나왔다. 부족하면 더 갖다 쓰라지만 그럴 순 없다. 물 한 방울도 나지 않는 태자관을 지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최대한 아끼고 아낄 생각이다. 그랬더니 1.5리터 한 병으로 머리감고 세수하고 이 닦고 발까지 싹싹 닦았다. 세수한 물로 머리를 감고, 맨 마지막 머리 헹군 물에 발을 닦은 것이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물을 펑펑 써댔는지 새삼 놀랍고 반성하게 한다.
그 사이 여주인은 저녁을 짓기 시작했다. 천장에 매달아 말린 ‘돼지 넓적다리’를 내려와 큼지막하게 토막 냈다. 탕을 끓이려는 것이다. 만드는 과정이 패스트푸드처럼 간단하다. 먼저 말린 돼지다리를 화덕에 검게 그을린다. 데운 물에다 그을린 돼지다리를 담가 불린 후 그을음을 말끔히 제거한다. 그리고 냄비에 준비한 고기와 무를 숭숭 썰어넣고 냉수를 부어 한 시간가량 끓인다. 먹기 직전 배추를 썰어넣고 다시 한소끔 끓이면 완성.
이 말린 돼지는 윈난성, 쓰촨성, 구이저우 등지의 농가에서 사철 요긴하게 먹는 ‘저장음식’이다. 우리가 겨울이면 김장을 하는 것처럼, 음력설 춘절이 가까워지면 집집마다 잘 기른 돼지를 잡는다. 그 돼지를 소금, 산초, 간장, 설탕 양념에 열흘쯤 재어두었다가 통풍이 잘되는 곳에 매달아 건조시킨다. 손님이 왔을 때 고기를 얇게 썰어 쪄내거나, 평소에는 주로 배추, 무, 두부를 넣고 끓여 탕으로 먹는다. 따로 소금을 넣지 않아도 고기에 밴 양념에서 충분히 맛이 우러난다. 싱거우면 각자 입맛대로 양념을 찍어 먹기도 한다.
뚝딱 한 상이 차려졌다. 흰 쌀밥과 탕이 전부이지만 맛은 기가 막힌다. 국 한 그릇과 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아줌마와 여주인은 국과 밥을 두 그릇씩 해치우며 나보고 조금 먹는다고 타박이다. 깨끗이 씻었고, 배도 부르겠다, 긴긴 밤 시간도 많겠다, 나시족 민가에서 자는 이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여주인에게 궁금했던 몇 가지를 물었다. 물론 함께 걸어온 아줌마 입을 통해서. 아줌마는 밥을 세 공기째 먹으면서 내가 하는 보통어를 나시어로 순차통역을 수행했다.

“이 집에는 몇 식구가 살아요?”
“남편과 아이 셋, 저, 이렇게 다섯 식구요.”
“날도 어두워졌는데 가족들은 언제쯤 돌아와요?”
“남편이랑 아이들은 리장에 일하고 학교 다녀요. 이 집에는 저 혼자 살고 있고요.”
“어머, 안 무서워요? 집이 이렇게 큰데!”
“무섭긴요. 시집와서 줄곧 아이 낳고 산 집인데요.”
“전기도 안 들어오는 이 컴컴한 집에서 혼자 밥하고 먹고 씻으려면 불편하지 않아요?”
“아참, 내 정신 좀 봐! 불 켜는 걸 깜빡했어요.”
밥 다 먹고 잘 때 되니까 불 켜는 게 생각났다는 여주인. 여주인의 성은 천(天) 씨로, 평소 혼자 있을 때는 불을 켜지 않는단다. 따로 불 켤 필요가 없단다. 화덕에 불을 피우면 잘 보인다면서. 세탁기도 없고, 칫솔, 치약, 비누 같은 생필품 하나 사려고 해도 2~3시간 산길을 걸어야 하는 이 마을이 너무 좋단다. 화장실 한 번 갈래도 대문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이 집이 그녀에게는 천국이란다. 내 눈에는 고립무원처럼 적막하고만. ‘대도시’ 리장에 갈 때마다 멀미가 날 것처럼 어지럽다는 여주인은 아이들과 남편이 돌아오는 명절과 방학을 기다리며 앞으로도 이 집을 떠나지 않을 거란다. 역시, 누군가의 삶은 내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아줌마, 저 먼저 들어가서 잘게요. 오랜만에 만난 두 분은 말씀 더 나누세요.”
“벌써요? 심심하면 안방에서 텔레비전 볼래요?”
“아이고, 심심하긴요. 내일도 잘 걸으려면 일찍 자야죠.”
덩그러니 침대 두 개만 놓인 방 안.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웠다. 세상에. 여주인 말이 실감난다. 배부르고 등 따스한 이 방이 내게도 천국이다.
여행작가 고승희(blog.naver.com/koara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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