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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시네마 logue]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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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12-16 07:31:30 수정 : 2011-12-16 07: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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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밑바닥에서;희망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기적
일본의 저명한 두 소설가는 아이들에 대해서 이런 말을 남겼다. 한 사람은 ‘아이는 눌러도 자란다’라고 말했고 다른 한 사람은 ‘아이보다 부모가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전자는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서’라는 작품을 쓴 사카구치 안고이고 후자는 ‘앵두’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이다. 심지어 다자이 오사무는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아마도 그에게 삶이란 고난이자 비극이며 일종의 형벌 같은 것이었나 보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감독 고레다 히로카즈의 시선도 얼핏 다자이 오사무와 비슷해 보인다. 소재만 보면 그렇다. ‘아무도 모른다’에서 아이들은 유일한 보호자인 엄마에게 버림받는다. 엄마는 아이가 많으면 세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여행 가방에 넣어 이사를 다닐 정도이다. 그나마도 곁에 있어주던 철없는 엄마가, 그런데 어느날부터 연락도 끊고, 돈도 끊는다. 아이들은 먹을 것도 떨어지고, 전깃불도 끊긴 그 집에서 하루하루 근근이 버텨간다. 그 와중에 귀여운 막내 동생은 끝내 죽음을 맞는다.

그런데, 이 끔찍한 사태를 보는 고레다 히로카즈의 시선은 따뜻하고 천진난만하다. 엄마가 없어도 형제자매끼리 즐겁게 보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햇살처럼 눈부시게 쏟아지는 아이들의 미소를 담아낸다. 맏이라는 이유로 동생의 시체를 암매장하는 순간에도 아이들은 성장한다.

사실 영화의 모티프가 된 실제 사건은 지독하고 처참했다. 아이들의 집은 불량한 청소년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죽은 막내는 그런 아이들의 폭력에 살해되었다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이 사건을 보는 감독의 시선, 희망이라는 이름의 온기이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역시 그렇다.

부모의 별거로 서로 먼 도시에 떨어져 살게 된 두 형제는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전화를 한다. 부모님들에게 각각 애인이 생기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천진난만하고 낙천적인 동생과 달리 맏이인 형은 어떻게 해서든 이 별거 사태를 해결하고 싶다. 그래서 그는 매일 밤 기도한다. 제발, 화산을 폭발시켜 달라고!

형은 화산 폭발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만약, 그런 재해가 일어난다면 엄마가 짐을 싸서 아빠가 사는 곳으로 이사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이 순진한 발상이지만 아이에게는 이 방법이 가족이 함께 살 수 있을 유일한 길처럼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은 신칸센 왕복 열차가 교차하는 순간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신칸센 열차 교차지점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렇다면 과연 기적은 일어날까? 사실, 소년에겐 기적이지만 화산 폭발은 많은 사람들에겐 재앙이다. 재앙을 기원하다니 철이 없어도 지나친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이 기원에는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깊이 있는 이해가 담겨 있다. 너무도 참담한 사건이라 해도 그래도 그 누군가에게는 이 사태가 기적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적 수긍 말이다. 쓰나미의 상처에 깊숙이 베인 일본인들을 향해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은 한용운 시인과도 같은 말을 건넨다.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되듯이” 그렇게 아무 것도 없는 폐허의 밑바닥에서 미래를 발견하고 희망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기적이라고 말이다.

사실, 기적은 이미 아이들이 여행을 하는 동안 사소하게 하나둘 일어나고 있었다. 꾀병 부리는 아이들을 양호 선생님이 모르는 척 눈감아 줄 때, 할아버지가 아이들의 조퇴를 도와 줄 때, 아이들이 경찰에게 인도되려던 순간 아이들의 거짓말을 받아들여 준 노부부가 나타날 때, 그때 이미 기적은 일어나고 있었다. 기적은 그렇게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 기적은 우리들의 선택과 의지에서 탄생할 것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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