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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철의 영화음악 이야기] 네이키드 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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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10-07 01:09:17 수정 : 2011-10-07 0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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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토 색소폰 거장 오넷 콜맨의 연주 광기 넘쳐 변혁의 시대였던 1950년대 미국을 상징하는 ‘비트 제너레이션’ 출신 문호들인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 그리고 윌리엄 버로스는 파격적인 글쓰기로 인간의 사유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놓았다. 그중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끼쳐온 작가 윌리엄 버로스의 ‘네이키드 런치(Naked Lunch)’는 유독 세상을 뒤흔들어 놓는다. 이성의 끝으로 치닫는 이 환각적인 여정(혹은 망상)은 도저히 영화화할 수 없는 추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플라이’, ‘비디오드롬’ 등의 이색적인 공포물을 만들어온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금단의 공모가 이뤄지면서 두 광인의 무서운 상상력은 기적처럼 결합된다.

1953년 뉴욕, 환각 효과를 가진 살충제로 방역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소설가 윌리엄 리는 여느 때처럼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자신의 아내 조앤의 머리에 유리잔을 올려놓고 윌리엄 텔 놀이를 하는 도중 아내를 사살한다. 정신을 차린 윌리엄은 패닉에 빠지며, 약 기운에 이끌리는 대로 암흑의 도시 인터존으로 도망친다. 인터존은 아프리카 북부의 항구도시로 설정돼 있지만 현실과 망상의 구분이 모호한 세계관으로서 존재했다. 기괴한 벌레의 모습을 한 타자기의 도움으로 자신만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와중, 죽었음이 분명한 아내를 닮은 수수께끼의 여성을 만나면서 혼돈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벌레 타자기에 의해 조종돼 작성한 보고서는 어느덧 ‘네이키드 런치’라는 소설로 완성된다.

다소 역겹고 불친절한 이 작품은 끔찍한 유머, 그리고 기괴한 특수효과가 관객들의 신경을 자극한다. 그 와중에 프리 재즈의 역사를 연 전위적인 알토 색소폰 거장 오넷 콜먼의 광기로 가득찬 연주가 흐른다. 50년대 모던 재즈와 아프리카, 그리고 혼돈의 요소를 모두 가진 그에게 이 작품은 썩 어울리는 프로젝트였다. 영화음악가 하워드 쇼어가 작곡한 77인조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오넷 콜맨의 즉흥연주가 얹힌 형태로 완성됐는데, 독특한 오케스트라 편곡에 이질적인 긴장감을 삽입해내면서 이상한 통일감을 만들어나갔다. 오넷 콜먼은 이미 ‘스카이스 오브 아메리카’에서 오케스트라와 작업했던 적이 있다. 앨범에는 또 다른 광인 텔로니오스 몽크의 곡 ‘미스테리오소’도 확인 가능하다.

광기뿐만 아니라 요염함과 환상적인 무드까지 표현해냈다. 사실 기존 오넷 콜맨의 곡들에 비하면 특유의 돌발적인 리듬감 같은 건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만의 프레이즈가 영화의 분위기와 묘하게 일치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 독보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은 영화음악으로는 이례적으로 후에 공연으로까지 이어졌다. 크로넨버그, 그리고 버로스에게 오넷 콜먼은 그야말로 최선의 한수였다.

이 작품은 결국 고난 끝에 작가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손에 넣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어떤 종류의 경계를 넘어가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가 아닌, 이미 그 선을 넘어간 사람들의 시점으로 그려진 영화다. 변태적인 창작활동의 반복, 변주는 마치 약물중독처럼 묘한 쾌락을 선사한다는 듯 묘사됐고, 역으로 작품을 쾌락의 부산물처럼 내비치기도 했다. 이 거대한 작품에 대해 일일이 얘기하기엔 지면이 좁은데, 아무튼 작가의 내적 체험으로 구성된 이 지독한 환영은 영화를 보는 이들의 일상에도 불길하게 침투해 들어갔다.

불싸조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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