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보십시오 세계인 입맛 잡을 테니”
최근 우래옥, 코리아 팰리스, 우촌 등 미국 뉴욕에 있는 유명 한식당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경기불황으로 장사가 잘 안 되거나 급등하는 임차료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 100% 출자한 한식세계화재단도 뉴욕에 고급 한식당을 내겠다며 올해 50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았지만 아직까지 마스터 플랜조차 나오지 않아 정부의 ‘한식 세계화’의 구호가 무색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3세 청년이 뉴욕 심장부에 퓨전 한식당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적인 레스토랑 가이드북 ‘자갓(ZAGAT)’과 미슐랭 그린가이드(여행가이드) 등에 이름을 올리며 명성을 떨친 ‘정식당’ 대표 임정식 셰프다. 7월 중순 뉴욕 트라이베카에 60석 규모의 퓨전 한식당 ‘JUNG SIK’의 오픈을 앞두고 현지에 머물고 있는 임 셰프를 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모든 문화의 트렌드를 이끄는 도시가 뉴욕이잖아요. 그래서 성공하기도 힘들지만 그만큼 파급효과도 클 것 같아서 뉴욕을 택했어요. 물론 뉴욕에 유명하고 실력 있는 경쟁자가 넘친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지금 아니면 영원히 안 될 것 같았어요. 아직 젊어서 혈기도 넘치고 의욕도 많고 체력도 되잖아요. 만약 잘 안 되더라도 먼 훗날 후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유명 한식당들이 임차료 문제 때문에 문을 닫는 시점에 식당을 여는 것도 적잖은 부담이 됐을 터. 재벌집 아들이라는 소문도 확인하고 싶었다.
“하하. 재벌은 사실무근이고요. 그동안 식당 운영하면서 모은 자금에 부모님께서 기둥 뿌리가 흔들릴 정도로 큰 맘 먹고 도와주신 것은 사실입니다. 지난해 봄 식당 오픈을 계획하고 뉴욕에 와보니 세계적인 경제불황이 불어닥친 뒤라 부동산 가격이 바닥을 치고 있었어요. 뉴욕은 서울과 달라 레스토랑 오픈기간이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기에 미리 계약하고 준비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도움이 됐습니다.”
뉴욕은 그에게 익숙한 곳이다.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복무하며 요리에 눈을 떴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제대 후 미국 어학연수 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친구들을 초대해 요리를 해주다가 아예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 입학했다. 그리고 뉴욕 최고의 프렌치레스토랑 ‘불리’와 스페인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아케라레’ 등에서 경력을 쌓으며 틈틈이 유럽 전역으로 미식여행을 다녔다.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 스페인 셰프들의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요리는 그의 실험정신에 단단한 밑거름이 됐다.
그렇게 외국에서 요리 공부와 미식 경험을 쌓고 한식을 따로 배우거나 한식당에서 일한 경험도 없는 그가 한식당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했다.
“여러 나라의 유명 식당들을 찾아다니면서 고급 한식당의 부재가 제게는 블루오션으로 다가왔어요. 지난 십 년간 정말 많은 나라의 요리를 경험해 봤지만,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장르의 요리를 갖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는 듯 싶어요. 한식의 최대 강점은 다양성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음식은 서양 옷을 입고 동양의 맛을 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특히 한국 식재료와 서양 조리법을 접목시키거나 동서양 식재료를 조화시키는 실험정신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칼국수 육수를 크림소스로 대체하고 청양고추, 애호박, 바지락 등을 넣은 ‘청양크림 칼국수’, 스페인식 볶음밥 조리법을 이용한 ‘멸치 빠에야’, 비빔밥에 프랑스의 대표적인 고급 식재료인 푸아그라를 넣은 ‘샹제리제 비빔밥’ 등이 그만의 방식대로 한식을 재해석한 메뉴들이다.
그의 음식을 놓고 한식이냐 아니냐 논란도 있다. 사실 외국인들에게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 그대로 정통한식을 알리느냐, 외국인의 입맛이나 취향을 고려해 변형한 한식으로 먼저 접근하느냐에 대한 이슈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질문과 마찬가지다.
“기존의 해외 한식당들은 한국 전통의 음식을 만들었지만 저희는 새로운 창작 한식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또 교육된 소믈리에와 매니저를 갖추고 단품 메뉴 없이 코스로만 서비스할 것이고요.”
그의 말대로 아직 젊어서일까. 패기 넘치는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의지도 다부졌다.
“우선 뉴욕에서 새로운 콘셉트의 한식을 인정받아 한식 세계화의 디딤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아시아를 중심으로 주요 5개 도시에 정식당을 오픈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특급호텔들이 포기하고, 수 십억원 예산을 갖고도 정부가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한식 세계화, 무모하다고 할 만큼 패기 넘치는 젊은 셰프를 통해 이미 의미 있는 한 발짝을 뗀 것 같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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