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 텔러는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서울여상 등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명문 여상 출신들의 전유물이었다. 대졸 출신보다 상대적으로 고객에게 친절하고, 고교에서 배운 금융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업무처리를 꼼꼼히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 은행에서는 심성이 곱고 일을 잘하는 여상 출신을 텔러로 ‘모셔오기’ 위해 서울여상과 동구여상 등 전국 명문 여상의 문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교장과 담임교사를 상전 모시듯이 했다. 이들의 허락을 얻어 졸업도 하기 전에 우수인재를 ‘입도선매’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전국의 명문 여상에는 중학 성적이 반에서 3등 안에 들어야 원서를 낼 정도로 수재들이 몰렸다.
이렇게 상종가를 치던 명문 여상 출신 텔러들이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하나 둘 ‘비운(悲運)’의 텔러로 직장생활을 마감했다. 외환위기 이후 닥친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회오리 속에서 일부만 남고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대신 대졸 여성들이 텔러로 등장했고, 은행들은 고졸을 신규 채용할 여력이 없어 더 이상 여상 출신들을 뽑지 않았다.
IBK기업은행이 최근 서울여상과 천안여상, 인천여상 등 전국 20개 전문계 고교에서 각각 1명씩 20명을 선발했다고 한다. 반갑고 신선한 소식이다. 전문대 이상 대학 진학률이 82%로 세계 최고인 상황에서 신입사원 15%를 우수 고졸생으로 선발한 것은 백번 칭찬해도 부족하다.
학벌·학력 중심사회 타파는 구호로만 되는 게 아니다. 기업은행같이 몸소 실천할 때 가능하다. 기업은행의 고졸 채용이 다른 금융기관은 물론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원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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