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비소녀’는 잊어주세요”
여자의 변신은 무죄다. 그러나 개그우먼들의 변신은 일종의 모험이다.
최근 자신이 직접 작사한 세미 트로트 '술래야'를 발표하며 가요계에 도전장을 낸 개그우먼 김다래는 과거 ‘우비소녀’로 활동하던 모습의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 그대로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3년 만에 방송에 복귀하는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5,6년이 흐른 것 같아요. TV를 보면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고 특히 (정)형돈이와 하하, 길, 제동 아저씨는 이제 너무 인기가 많아져서 저와 급이 안맞아요.(웃음) 위축되지만 겁먹지 말고 당당해져야지요.”
‘개그콘서트’ 출연 시절부터 돈독했던 정형돈과는 아직도 끈끈한 우정을 자랑하고 있다. 한때 버라이어티에서 큰 두각을 보이지 못했던 그에게 ‘병풍이냐’며 놀려대던 김다래는 이제 채널을 돌릴 때마다 마주치는 그를 보며 코끝이 찡하다.
‘우비소녀’는 아직 김다래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개그콘서트’의 코너 ‘달래야’에서 노랑색 우비를 입고 귀여운 표정과 깜찍한 목소리로 ‘내끄야’, ‘나 이뽀’ 등의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그다.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시절 왜 과감히 휴식을 택했을까.
“정말 자고 일어났더니 떴어요. 차곡차곡 밟고 일어나 인기를 얻는 것과 뭣 모를 때 인기를 얻는 것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저는 그 인기를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거든요. 어린 마음에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내내 우울했어요. 갑자기 돈 꿔달라는 친구들이 많아졌고, 성격이 모나서 방송국에서 왕따 아닌 왕따였어요. ‘우비소녀’ 촬영 직전까지 울다가 올라가서 연기하고 그랬어요.”
외모로 인한 한계도 느꼈다. ‘얼굴만 봐도 웃긴’ 개그맨들과 달리 아무리 망가지는 장면을 연출해도 사람들은 웃지 않았다. 그는 “다른 동료가 꽈당 넘어지면 폭소가 터졌는데 내가 넘어지면 방청객 특유의 ‘어우’ 하는 안타까운 소리가 나오더라”라며 “나는 웃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고 털어놨다.
“후회는 안 해요. 저는 외로웠으니까요. 당시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시기와 질투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융통성이 없었던 거죠. 다들 제가 애교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누군가에게 혼나면 ‘이러이러하다’라고 설명을 해야 속이 시원했어요. 그냥 무던히 ‘네네’하고 넘어가도 됐으련만….”
어느 순간 꿈이 사라진 자신을 들여다본 김다래는 망연한 마음을 달래며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한번도 홀로 여행을 떠나본 적도 스스로 은행 한번 가본 적 없는 그는 혼자 떠나기로 결심하며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공부도 하고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어요. 처음에는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나에게 투자하는 시간이 많았고 나를 놔버리니 너무 편안했어요. 윤손하 언니는 제가 일본에 왔다는 소식을 지인에게 듣고 먼저 전화를 걸어줬어요. 화려한 여배우의 이미지는 없고 소탈하고 너무 다정했어요. 정말 많은 힘이 돼 준 고마운 사람이에요.”
일본에서도 무대에 오르는 행운을 누렸다. 우연히 만난 재일교포 사람이 알고보니 일본에서 큰 연예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각종 한류 행사 등에 사회자로 마이크를 잡았고 조금씩 인기를 얻어갔다. 그는 “나는 내가 보아나 최지우가 되는 줄 알았다”며 “일본에서 나처럼 깜찍하고 귀여운 얼굴이 인기가 많더라”라며 자랑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활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비자 문제로 활동을 접어야만 했던 것. 한국에 귀국할 것을 결심한 김다래는 자신이 무대에 빨리 다시 오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그는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무대는 가수의 길이었다”며 “평소 친분이 있던 박혜경 언니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겨울부터 김다래는 음반을 구상했다. 한사코 반대하던 박혜경은 직접 노래 가사를 쓰고 노래 연습을 하는 그의 열의를 보고 적극적으로 지원군으로 나섰다. 애초에 모던락을 생각했지만 "모든 노래가 동요처럼 들리는 목소리” 때문에 포기했다. 자신에게 맞는 목소리 톤을 찾다보니 트로트가 정답이었다.
“가수나 연기자들은 서로 다른 분야에 도전해도 박수를 보내는 데 반해 개그맨들이 연기나 노래를 한다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개그맨들도 끼 많거든요. 노래로 즐거움을 전할래요. 예쁘게 봐주셨음 좋겠어요. 트로트 차트에서 1위하는 것이 목표예요.”
그의 꿈은 원래 개그우먼이 아니었다. VJ로 활동하던 김다래를 보고 누군가 공채 개그맨에 도전해볼 것을 권유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참여했던 시험은 합격이라는 행운을 안겨줬다. 이번에는 다르다. 몇 개월간 혹독한 연습을 거쳤고 직접 발로 뛰며 땀으로 앨범을 만들었다. 그래서 각오도 남다르다.
“가수로 활동한다고 해서 개그를 버린 것은 아니에요. 콩트는 평생할 겁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지 않을 거예요.”

/ 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사진 허정민 ok_hj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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