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베로나로 달콤한 약혼여행을 떠난 작가 지망생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 허나 기대와는 달리 약혼남 빅터(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는 그 곳에서도 일에 파묻힌 채 사랑하는 연인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다. 결국 다시 만나기로 약속키로 하고 각자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는 두 사람.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품 속 배경지를 돌아보던 소피는 비밀스러운 사랑을 고백하는 ‘줄리엣의 발코니’에서 우연히 50년 전에 쓰여진 러브레터 한 통을 발견한다.
그리고 안타까운 사연을 읽고 용기를 내라는 답장을 보냈는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편지의 주인공 클레어(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그녀의 손자 찰리(크리스토퍼 이건)가 찾아온 것. 이제 소피는 잃어버린 사랑을 찾으려는 클레어를 돕고자 함께 나서는데 (중략)


스피디한 액션도 없고 포복절도한 유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끈적끈적한 베드신이 나오지도 않는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 이렇게 보면 이 작품은 요즘 흔히 요구되는 흥행 요건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급과 같은 흥행 대박은 아니더라도 쏠쏠한 재미를 볼 것 같다. 왜냐하면 올 해 본 영화중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살짝 흥분되는 로맨틱한 사랑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감성 로맨스에 조화롭게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손꼽히는 시에나의 ‘캄포광장’과 시에나 전체를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만자의 탑 그리고 드넓게 펼쳐지는 포도밭을 보면 왠지 모를 여유로움을 느낀다.

특히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클레어가 그토록 소원하던 첫 사랑의 남자를 만나는 신이다. 황혼기에 접어든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그들이 품고 있는 사랑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더욱이 클레어역의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그의 첫사랑 로렌조역인 프랑코 네로는 실제로 40년 이상 부부의 연을 맺고 있는 사이. 1966년 처음 만나 <카멜롯>을 통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이후 43년간 10여 편의 작품에 함께 출연했고 이제는 눈빛만 보아도 마음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완벽한 부부이자 동료가 되었다. 따라서 영화의 내용은 가공의 이야기지만, 내면 연기만큼은 영화와 현실이 교차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두 배우는 영화 촬영 내내 과거의 가슴 설레는 첫 만남을 회상하면서 즐겁게 연기에 임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누군가 말하기를, 행복은 점이고 고통은 선(線)이라고 했다. 행복을 느끼는 시간은 아주 짧고 고통은 상당히 긴 시간 지속된다는 뜻인데, 적어도 영화 속 클레어는 여기에 해당되는 것 같지 않다. 그녀가 보낸 장구한 세월을 고통의 시간이 아닌, 기쁜 만남을 위한 희망의 기간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벼운 감성 로맨스의 분위기이면서도 관객들에게 한번 쯤 생각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전해준다. 여기에는 소피가 겪는 두 남자 사이의 갈등도 포함된다. (그 이상 언급은 스포일러가 될 것 같음)
끝으로 아침이면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느껴지는 요즘의 날씨에 딱 맞는 영화, 그리고 가벼운듯 하면서 진지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을 권하고 싶다.
영화평론가 / 延 영상문화연구소장 연동원 yeon04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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