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성과 전혀 없는 20대 청년… ‘핏줄’ 이유만으로 초스피드 등극
세습정당화 위해 선군사상 명문화도… 후계자로서 능력 입증 시험대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 후계구도가 공식화됨에 따라 현대사에 유례없는 3대 세습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반응은 싸늘하다. TV 리얼리티쇼에 빗댈 정도로 조소거리가 되고 있지만 북한은 결국 3대 세습을 강행했다. 정치적 성과가 없는 20대 청년이 ‘혈통’을 배경으로 국가 2인자, 사실상의 후계자로 전면에 나선 것이다.
북한의 3대 세습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9일 “최고지도자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는 북한은 사실상 ‘사회주의적 군주제’ 국가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군주제 국가에서 20대 나이는 ‘왕세자’에 임명되거나 왕위를 계승하는 데 결코 어린 나이라고만 할 수 없다”면서 북한 정서에서는 김정은의 등장이 외부에서 느끼는 정도로 파격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능력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없는 상태에서 단숨에 인민군 대장,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 사실상의 2인자로 깜짝 데뷔한 것은 북한 당국의 ‘조급함’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3대 세습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은 2008년 8월 김 위원장이 뇌혈관질환으로 치료받은 뒤다. 그의 와병설은 북한 정권 핵심인사들의 불안감을 재촉했고, 자신들의 입지를 보장하면서도 빠른 시간 내에 체제 안정을 도모할 방법으로 세습을 선택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정은이 지난해 1월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북한 당국은 ‘업적 쌓기’에 나섰다. 북한 매체에서 공식적으로 그의 이름을 언급한 적은 없지만 당국은 150일전투 속도전(주민 노력동원), 5·1절(노동절) 행사, 김일성 주석의 97회 생일(4월15일) 기념 불꽃놀이 등을 모두 ‘김대장 작품’이라고 주민들에게 은연중에 선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을 후계자로 포장하는 최대 재료는 역시 ‘혈통’이다. ‘장군복, 대장복 누리는 우리 민족의 영광, 만경대 혈통, 백두의 혈통을 이은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 김정은을 찬양하기 위해 평양 시내에 붙었다는 이 문구는 북한 당국이 김정은의 혈통을 가장 먼저 내세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8월 김 위원장이 중국 방문에서 지린성 등을 방문한 것 역시 김씨 일가의 혈통을 강조하고 김정은 후계구도에 힘을 싣기 위한 행보였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3대 세습 정당화를 위해 국가 지도사상도 바꿨다. 김 위원장은 1974년 당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된 직후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고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당 사상사업의 총적 임무로 제시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로는 권력세습을 정당화할 수 없기에 주체사상에 입각한 지도자 신격화를 시도한 것이다. 3대 권력세습을 앞두고 북한은 또 한 차례 국가 지도사상을 바꿨다. 북한은 지난해 4월 헌법 개정을 통해 ‘공산주의’ 표현을 삭제하고 ‘선군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명문화했다.
이어 올해 당 대표자회를 계기로 김정은이 대장,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임명되면서 군 조직의 2인자로 올라섰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헌법개정은 결국 김정은 후계구도를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였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김정은은 후계자로서 정치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북한은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에서 고립이 심화되고 주민들은 수년째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주민들의 탈북이 급증하는 데다 주민 통제도 이전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후견 그룹이 있지만 엘리트들의 이탈 가능성도 열려 있다.
특히 ‘3대 세습’으로 권력을 넘겨받았다는 사실은 김정은의 정치활동, 특히 대외관계에서 태생적 한계로 따라다닐 가능성이 크다. 후계자의 앞날이 장밋빛일지 핏빛일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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