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공격·전원 수비 ‘토털사커’ 가장 잘 소화
이번대회 패스 총 3800여개… 성공률 무려 81%
라이벌 레알·바르셀로나 선수들 화합도 한몫 남아공의 희망봉에 승리의 깃발을 꽂은 주인공은 ‘무적함대’ 스페인이었다.
유럽의 힘과 남미의 개인기, 경쟁심으로 무장한 스페인이 12일(한국시간) 남아공 월드컵 결승에서 네덜란드를 1-0으로 꺾고 마침내 세계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전성시대를 열어젖혔다.
연장 후반 11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천금 같은 결승골로 우승컵을 거머쥔 것이다. 늘 우승후보로 꼽히면서도 메이저 대회에서 인연을 맺지 못하던 스페인은 2008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 이어 월드컵까지 제패하면서 세계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썼다.
스페인의 왕좌 등극은 ‘패스의 미학’을 알려줬다. 정교하고 창의적인 패스를 바탕으로 볼 점유율을 높이다 단숨에 상대 골망을 뒤흔드는 스페인은 압박과 수비, ‘지키는 축구’로 옮겨가려던 세계축구에 경종을 울린 셈이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사비 예르난데스, 사비 알론소 등 최정상급의 미드필더들뿐 아니라 공격수와 수비수들이 만들어내는 ‘패싱축구’의 경지는 축구의 예술성을 보여주고도 남았다.
스페인 대표팀의 강점은 세계 정상급의 미드필더진에서 찾을 수 있다. 체격은 크지 않지만 개인기가 뛰어난 미드필더들이 아기자기한 패스게임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능력은 가히 예술의 경지다. 끈끈한 조직력과 화려한 개인기가 조화를 이룬 스페인은 결승전을 포함해 이번 대회 7경기에서 만들어 낸 패스는 모두 3800여개로 성공률은 무려 81%에 이른다. 패스 횟수 2위인 독일과 1000개가량 차이가 나고, 같은 7경기를 치른 우루과이의 1890개보다는 무려 두 배나 많다.
스페인 축구는 1970년대 세계축구 변화를 이끌었던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네덜란드식 ‘토털사커’를 가장 현대적으로 소화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스페인 축구의 심장인 세계 최강 클럽 FC 바르셀로나와도 무관하지 않다.
토털사커의 중심이던 네덜란드 축구영웅 요한 크루이프가 1988년부터 1996년까지 바르셀로나 감독을 맡아 리그 4연패를 이뤘고, 현재 바르셀로나 감독인 호셉 과르디올라 역시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를 지휘할 때 선수였다. 바르셀로나에 토털사커가 녹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비센테 델 보스케(60) 감독이 지휘하는 스페인 대표팀은 2008∼09시즌 전인미답의 6관왕을 달성한 바르셀로나 멤버를 대표팀에 옮겨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드컵에 출전한 스페인 대표 선수 23명 가운데 발렌시아를 떠나 새 시즌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다비드 비야를 제외하고도 7명이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베스트 11으로 기용됐다.
스페인이 그동안 메이저대회에서 무관에 그쳤던 것은 우리나라의 영호남보다 더 극심한 지역감정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레알 마드리드를 거점으로 하는 카스티야 지방과 바르셀로나가 거점인 카탈루냐 지방은 사용언어도 다르다. 역사적으로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가진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세계 최고의 ‘엘 클라시코’라는 더비를 낳았지만, 두 지방의 반목과 대립은 오히려 대표팀에서는 조직력을 해치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프리메라리가를 주름잡는 최고 선수들이 대표팀에만 들어오면 서로 대립하는 바람에 화합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와 감독 생활을 했던 델 보스케 감독은 “축구대표팀이 통합됐듯 스페인 전체도 똑같이 통합되기를 희망하고, 스페인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이 두 지역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지도력을 발휘한 것 또한 스페인 축구의 한을 풀게 한 원동력으로 꼽힌다.
박병헌 기자 bonanza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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