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따르는 어린이 납치 성폭행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큰 충격에 빠진 가운데 아이를 잃은 가족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를 리얼하게 그린 영화 ‘파괴된 사나이’(감독 우민호)가 1일 개봉됐다. 신실한 목사이자 성실한 가장인 주영수(김명민)는 어느 날 5살 딸 혜린이가 유괴되고, 신 앞에 기도를 올리지만 딸은 돌아오지 않는다. 신앙을 내던지고 타락한 삶을 살던 주영수는 사건 발생 8년 후 범인 최병철(엄기준)에게서 딸이 살아 있다는 전화를 받은 뒤 딸을 찾기 위한 사투를 시작한다.
![]() |
◇우민호 감독의 영화 ‘파괴된 사나이’는 아이를 잃은 가족이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를 리얼하게 담아 냈다. 언니네홍보사 제공 |
영화는 딸을 유괴당한 주영수가 목사직을 내던지고 아내와 헤어진 뒤 타락한 사업가로 살아가는 모습을 비교적 자세히 그린다. 시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는 마음, 서로간의 상처를 그리려 한 것이다.
이는 어쩌면 우민호 감독이 유괴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강렬한 부성애를 그리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 감독이 “잃어버린 빛을 찾아 어둠 속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관객들이 희망을 봤으면 한다”고 말한 것도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반대로 서스펜스와 스토리 구성이 약해지는 단점도 있어 보인다. 예를 들면 주영수와 범인이 주차장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등 스토리 전개가 다소 치밀하지 못한 부분도 더러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범인이 드러난 이후부터는 보통의 유괴 영화처럼 사건 전개가 좀 더 스토리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해피 엔딩 VS 반전 부족=영화가 비교적 매끄럽고 감동적인 부성애를 드러내며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는 점에서도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 개봉된 많은 유괴 영화의 결말이 비극적인 것과는 상당히 대조된다.
해피 엔딩은 대중과 좀 더 넓은 공감대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도 적지 않다. 극장에서 만난 상당수 관람객들은 “해피 엔딩이라서 좋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해피 엔딩은 다른 유괴 영화와 달리 관객들의 부담은 덜하지만, 극적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마이너스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추격자’처럼 범인 얼굴이 초반에 공개돼 영화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기도 한다.
영화에서 극적 반전이 최소화된 것은 유괴된 딸이 사건 발생 8년 후 유괴범과 함께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건 이후 8년 동안 한 가정이 파괴되는 과정에 주목하면서 유괴범과의 갈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

김명민은 이전 작품들 못지않게 치열한 ‘연기 정신’을 선보였다. 딸을 잃은 애타는 연기를 위해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PC방에서 밤을 지새는 장면을 위해선 실제로 3일간 밤을 새우고 촬영에 임하기도 했다. 김명민은 “촬영 기간 동안 주영수가 되어 살았다”고 말할 정도다.
수억원짜리 명품 진공관 앰프를 사기 위해 어린이를 납치하고 살인도 서슴지 않는 엄기준의 유괴범 연기도 탁월했다. 뮤지컬과 연극 무대에서 활동했던 그의 목소리와 눈빛은 마치 살인자의 그것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8년 만에 복귀한 박주미도 혜린이 어머니 역을 맡아 얼굴을 까맣게 분장하는 등 과거 청순미를 잊게 할 정도로 연기에 집중한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출연진의 뛰어난 연기는 되레 스토리 구성을 단조롭게 하지 않았나 하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연기가 뛰어났다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명품 연기가 오히려 스토리의 부족함을 메웠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영시간은 112분.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