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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기행] <3·끝> 테베, 산 자와 죽은 자들이 공존하는 古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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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4-07 22:57:02 수정 : 2010-04-07 22:5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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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꿈꾼 파라오들 산 자들의 탐욕에 아직도 잠 못 깨고… 파라오의 머리에 비둘기들이 앉아서 쉬고 있다. 툭 터진 평지에 거대한 석상으로 썰렁하게 앉아 있는 그이의 얼굴은 말이 아니다. 코는 여지없이 깨졌고 두 눈마저 검은 구멍으로만 남아 아침 햇빛 속에 깊은 그늘을 만들고 있다.

◇카르낙 신전 입구에 도열한 스핑크스. 산양의 형태를 지닌 이 스핑크스들은 아몬 신을 본뜬 것이다.
이들은 해가 뜰 무렵이면 노래를 부르곤 했다. 돌의 균열이 이상 작용을 일으킨 것인지는 모르되 아멘호테프3세(B.C 1386∼1349)를 기린 이 석상들은 2000년 전 지진이 일어난 뒤부터 기이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졌다. 사람들은 트로이 전쟁에서 죽은 에티오피아의 영웅 멤논이 매일 해가 뜰 때마다 구슬픈 탄식을 내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동양에 관심이 많았던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이 기묘한 연주를 들으러 수차례나 이 먼 곳까지 방문을 했다. 애석하게도 이후 다른 로마 황제가 복원을 한답시고 이들을 깊은 침묵 속으로 묻어버렸다. 이교도와 침략자들이 코를 깨고 얼굴에 망치를 대는 수난을 다시 2000년이 흐르도록 겪어온 파라오는 비둘기들을 머리와 어깨에 앉힌 채 지금도 하릴없이 세월만 응시하는 중이다.

이른바 ‘멤논의 거상’으로 불리는 이 석상은 테베의 나일강 서안, 죽은 왕들의 계곡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해가 지는 나일강 서쪽은 죽음의 땅으로 상정했고, 해가 뜨는 나일강 동안(東岸)은 산자들 혹은 신들의 땅으로 상정했다. 테베가 현재 통용되는 지명은 아니다. 옛날 그리스인들이 이집트의 고도에 그들 식으로 붙인 이름이기도 하고, 나일강 동안과 서안의 기념물 구역을 통칭하는 명칭이기도 하다. 테베의 중심에 현존하는 상징적인 도시는 룩소르인데,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나일강 동안과 서안을 아우르기에는 사실 룩소르보다 옛 이름 테베가 더 적합한 것 같다.

◇죽은 왕들의 계곡 입구에 서 있는 ‘멤논의 거상’. 이들은 2000여년 전 해가 뜰 무렵이면 기묘한 소리를 내며 울어서 로마의 하두리아누스 황제까지 다녀갈 정도였지만, 다시 침묵에 잠겼다.
멤논의 풍화되고 훼손된 얼굴을 지나 ‘왕들의 계곡’을 다녀왔다. 피라미드는 초기에 파라오들이 선호했던 무덤 형식인데, 너무 거대한 노역과 비용이 소요돼 이후로는 테베 서쪽 황갈색 계곡에 깊은 무덤을 팠다. 이마저 산자들의 탐욕으로 훼손돼 파라오들은 그들의 믿음대로 아직 부활하지 못했다. 무덤 입구에 앉아 있는 경비원들에게 입장료를 건네고 화려한 채색 벽화를 양 옆에 거느린 구불구불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 파라오의 깊은 잠자리까지 구경하고 나온 이들의 표정이 그리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동굴 속의 열기 때문인지, 죽은자의 잠을 방해하고 나온 자책 때문인지는 모르되 두루 덤덤하고 어떤 관광객 사내는 허연 얼굴로 한쪽 구석으로 달려가 어깨를 들썩인다. 파라오의 저주나 죽은자에 대한 슬픔 때문이라기보다는 전날 과음한 데다 열기 가득한 깊은 동굴에 들어갔다 나온 후유증일 게다.

◇카르낙 신전의 람세스 조상. 다리 아래 애틋한 여인을 작은 크기로 새겨 왕이 품게 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집트인들에게 ‘미라’는 죽은 후 부활을 염두에 둔 중요한 장례 풍속이었다. 2500년 전 그리스 사람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다시 의존하자면, 그 미라를 만드는 방법은 재력에 따라 3가지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미라를 만드는 기술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일단 시체가 오면 손님들에게 나무로 만들어 진짜처럼 칠한 다양한 시체들을 보여준 뒤 선택하게 한다.

가장 비용이 비싸고 완벽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철사로 콧구멍을 통해 뇌수를 긁어낸 다음, 날카로운 에티오피아 돌로 옆구리를 열고 복부의 모든 내용들을 들어내 야자수로 만든 술로 조심스럽게 닦아낸다. 향신료와 계피, 순수한 몰약으로 빈 자리를 채운 뒤 옆구리를 꿰매고 70일간 나르륨 속에 넣어둔다. 이 기간이 끝나면 시체를 다시 꺼내 씻긴 후 아마포 붕대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친친 감은 뒤 사람 모양으로 만들어진 나무관에 넣어 부활을 기다리게 한다.

이것이 가장 비싼, 초일류 이집트식 염습이었다. 나머지 2가지는 지면 사정 때문에 생략하는데, 대략 일일이 해부하기보다는 약으로 내장을 녹여 흘러내리게 하는 방식이다. 흥미롭지만, 참담한 팁 한 가지. 3,4000년 전에도 정욕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던 모양인데 이집트인들은 아랫것들의 ‘시간(屍姦)’을 염려해 사회적 지위가 있는 남자의 부인들이나 귀한 신분의 여성들은 죽은 뒤 즉시 방부처리하지 않고 3∼4일이 지나서야 미라 기술자들에게 넘겼다는 기록이다.

2500년 전 사람 헤로도투스의 미라를 만드는 방식에 대한 세세한 전언도 자극적이지만 더 인상 깊은 대목은 고대 이집트 부자들의 만찬 풍속이었다. 부유층의 사교모임에서 만찬이 끝나면 하인이 관 하나를 끌고 손님들 주위를 도는데, 관에는 진짜같이 조각하고 칠이 된 나무 시체가 누워 있고, 하인은 손님들에게 차례로 그것을 보여주며 “이것을 보고 마음껏 마시고 행복하라, 너희들이 죽은 뒤엔 이렇게 될지니”라고 외치고 다녔다는 얘기다. 하물며 2500년 전에도 죽음을 서글퍼하며 마음껏 마셔라, 부어라, 행복하라고 외쳤다는데, 다시 살아나고 싶어 미라를 만들어 꼭꼭 묻고 야단법석을 떨었다는데, 그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나 기록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도, 제 아무리 문명이 진전해도, 죽음은 여전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21세기 한국에 사는 소설가 구효서가 최근작 ‘랩소디 인 베를린’에서 “죽음은 삶 때문에 인식되는 것이기에 삶이 끝나면 죽음도 끝난다”고 발설해 한참 멍해진 적이 있긴 하다.

◇밤에 만난 카르낙 신전의 오벨리스크.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오벨리스크는 사악한 기운을 흩어버리고 하늘의 힘을 끌어내려 신전에 불어넣는 기능을 수행했다.
해가 중천에 높이 뜬 한낮에 죽은 자들의 계곡을 떠나 살아 있는 자들과 신들의 거주지, 나일강 동안으로 건너왔다. 크루즈에서 쉬다가 해가 질 무렵 나루터에서 마차를 불러 카르낙 신전으로 갔다. 카르낙 신전은 이집트 최대 신전이다. 이곳에서 역대 파라오들이 신들의 재가를 받는 취임식을 가졌다. 하늘과 땅을 잇는 오벨리스크 아래 열주로 서 있는 거대한 기둥만으로도 이 신전의 규모는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엄청난 인파가 카르낙 신전 주위에 모여들었다. 금빛 대문이 열리고 왕과 그의 아들이 선두에 선 행렬이 모습을 나타내자, 환희의 물결이 넘쳐흘렀다. 이처럼 신들께서 땅 위에 계시므로 올해는 행복한 한 해가 될 거라는 즐거운 기대에 모든 이들이 들뜨기 시작한 것이다. 행렬은 둘로 나뉘어 나아갔다. 하나의 행렬은 카르낙과 룩소르를 이어주는 스핑크스 길을 따라 육로로 가고, 또 하나의 행렬은 카르낙 신전의 부두에서 룩소르 신전의 부두까지 나일강의 수로를 따라간다.”(크리스티앙 자크 소설 ‘람세스’ 2권, 315쪽)

◇나일강 서안에 자리 잡은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례 신전. 현대의 관광버스들과 고대 죽은 자의 황갈색 신전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신전은 축제의 공간이요, 산자들이 신과 만나는 기원의 공간이었다. 카르낙 신전 옆에 룩소르 신전이 또 지어졌는데, 규모는 아담하지만 카르낙보다 더 아기자기한 신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평화로운 공간이다. 우리는 카르낙과 룩소르 신전을 석양 무렵에 일별한 후 저녁에 다시 카르낙 신전 라이트쇼를 찾았다. 어둠과 조명이 엇갈리는 신전을 피로한 몸으로 캄캄하게 돌아다니다 돌아왔다. 세월의 시차 때문에 어지러웠다.

산양의 얼굴을 한 아몬 신들의 스핑크스가 도열한 카르낙 신전 입구는 낮과는 달리 엄숙하고 조명이 받쳐주는 종교적인 공간이었다. 거대한 열주들 사이로 신전 곳곳에 숨겨 놓은 고성능 스피커들이 둔중한 음악과 음성을 달빛 아래 종종 터뜨렸다. 밤의 카르낙은, 시간과 죽음과 이별을 모두 뛰어넘는,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위로의 공간이었다. 그리운 이를 다시 본다고 그리움이 영원히 해갈되는 게 아니라면, 이 환상의 공간에 영원히 둥둥 떠서 부유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룩소르=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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