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는 아레스가 트로이를 도우면서 그리스가 패하여 철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던 것이다. 다른 신들은 인간들의 전쟁에 개입해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뒤에서 돕거나 조언을 하는 정도인데 반해, 아레스는 적극적으로 전쟁에 개입하여 아예 인간들을 대신하여 선봉에 나서서 싸우고 있었다. 그런 잔인성 때문에 그리스군은 전의를 잃고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것은 신으로서 본분을 망각한 일일 수도 있었다. 헤라는 제우스에게 그 점을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건 아니에요, 제우스. 아레스를 보라고요. 이건 인간들의 전쟁이 아니라 신과 인간의 전쟁이잖아요. 아무리 우리 아들이라도 이건 원칙에 어긋나요. 빨리 아레스를 불러 올려야 해요."
헤라가 강력하게 항의하자 제우스도 더는 아레스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아레스의 무분별하고 잔인한 성격을 제우스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그대가 의견을 제시하니 그대의 의견대로 하게. 아레스는 그대와 나의 자식이니 그대가 알아서 이야기하라. 단 내가 그대에게 경고했듯이 아레스를 데려오되 그대 역시 전쟁에는 개입하지 말라."
제우스의 허락을 받자 헤라는 기쁜 마음으로 얼른 전쟁터로 내려갔다. 헤라는 황급히 디오메데스 곁으로 다가가서 그를 독려했다.
"디오메데스, 나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니라. 아레스는 나의 아들이지만 너무 잔인해서 전쟁터에서 그를 물러나게 할 것이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아레스를 치라."
디오메데스는 아레스를 보기만 해도 겁이 질렸었지만 헤라의 격려를 듣고는 용기가 생겼다. 헤라의 말을 듣자 디오메데스의 온 가슴은 기쁨이으로 가득찼다. 그는 그리스군을 도륙하며 다가오는 아레스에게로 돌진하면서 그에게 창을 던졌다. 그의 육중하고 날카로운 창은 아레스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테나 여신이 나섰다.
아테나 여신은 날아가는 창에 힘을 실었다. 그러자 디오메데스의 창은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가더니 아레스의 몸을 꿰뚫었다. 아테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것은 파리스가 아프로디테를 선택하면서 자신에게 수모를 안겼던 것에 대한 복수이기도 했다. 그녀가 그리스 편에 가담한 것도 미의 여신 선발에서 아프로디테를 파리스가 선택함으로써 자기는 수모를 당한 일 때문이었다.
헤라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아레스, 제우스가 바람을 피웠다가 제우스 머릿속에 숨겨 두었다가 난 딸 아테나의 대결에서 아테나가 승리한 것이다. 전쟁의 신 아레스는 창에 몸을 관통당하자 화가 나서 고래고래 큰 소리를 질렀다. 그 무서운 소리는 병사 일 만 명이 소리 지르는 것보다 더 컸다. 그 소리가 얼마나 두려웠던지 그리스군이나 트로이군도 기가 질려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아레스는 부상을 당하고 나서 화가 잔뜩 나 올림포스로 올라갔다. 어머니 헤라가 자기를 해롭게 한 데에 화가 났고, 아버지 제우스가 자신의 편을 들지 않는 것이 몹시 불평스러웠다.
"나의 아버지이시며, 신들 중의 신 제우스시여. 어찌 이 수모를 참아야 합니까? 아테나는 이번 전쟁에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그리스를 편들며 개입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 아테나를 불러 올리셔야 합니다. 아테나는 모습만 아름다울 뿐, 속에는 약자를 괴롭히는 불량하기 짝이 없단 말입니다. 비겁한 신이라고요."
그러나 제우스는 한참동안 말 없이 아레스를 준엄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그에게 한 마디 했다.
"참 한심한 놈이로군. 어쩜 너는 네 어미를 닮았냐. 네 어머니만큼 참을성도 없고, 툭하면 낑낑대며 우는 소리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 네 명색이 전쟁의 신 아니냐? 그런데 아테나에게 당하고 와서 우는 소리야. 너를 보면 너를 아들로 둔 내가 창피해 이놈아. 딴 소리 말고 가서 푹 쉬고 있어. 네 아프로디테 뒤꽁무니나 따라다니면서 전쟁을 하는 것 아냐. 이놈아. 쯧쯧,"
제우스가 벌컥 화를 내며 말하자 아레스는 할 수 없이 자리에서 물러나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이제 트로이를 도울 신이 없었다. 그러자 트로이군은 물러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헥토르는 전황이 불리함을 느끼고 즉시 후퇴명령을 내렸다.
그리스군이 아레스 신의 고함소리에 주눅 들어 꼼짝하지 못하고 있을 때 트로이군은 재빨리 후퇴하여 성안으로 들어가 성문을 굳게 닫고 수비에 치중했다. 상황이 유리해졌음을 안 디오메데스가 다시 반격을 시작했지만 이미 트로이군은 성안으로 후퇴를 끝낸 후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트로이군이 성안에서 수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스군은 좀체 물러날 기미가 없었고, 트로이군은 점점 사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아테나 여신이 그리스군을 지원하고 있는 한 언제 트로이성이 무너질지 알 수 없는 위기일발이었다. 이때 신의 뜻을 식별하는 데 현명한 헥토르의 동생이 헥토르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가 헥토르에게 권했다.
"헥토르 형님. 어머니에게 달려가 형이 건의해 보세요. 왕비에게, 아니 우리 어머니에게 가서 어머니가 가진 옷 중 제일 아름다운 옷을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라고 하세요. 아테나 여신은 사치를 부리는 걸 좋아해요. 그러니 그 옷을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고 트로이에게 은혜를 베풀도록 기도를 올려 달라고 하세요."
이 말을 듣고 있던 헥토르는 동생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생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헥토르는 성문들을 지나 궁전으로 쏜살같이 달려가서 어머니에게 동생이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프리아모스 왕의 아내 헤카베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그에게 말했다.
"네가 고생이 심하구나. 못난 동생을 둔 탓에 고생이 많다. 너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렇게 말하고 헤카베는 별처럼 빛나는 옷을 꺼냈다. 그녀는 즉시 말을 내어 아테나 여신의 신전으로 달려가 아테나 여신을 만났다. 그녀는 아테나 여신의 무릎 위에 옷을 놓으면서 간청했다.
“아테나 여신이시여, 이 도시와 트로이의 아내들과 어린 자식들을 보살펴주소서.”
그러나 아테나 여신은 그녀의 기도를 들어 주지 않았다. 헤카베가 몇 번이고 무릎을 꿇고 간청했지만 그녀는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파리스의 선택이 그만큼 그녀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도 아테나 여신은 자신의 미모를 뽐내고 싶어 했다. 그런데 파리스가 아프로디테를 최고의 미의 여신으로 선택하는 순간부터 파리스를 미워했던 것이다. 그것을 헤카베로서도 되돌릴 수는 없었다.
헥토르는 어머니로부터 아테나 여신의 마음을 돌리는 데 실패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트로이의 운명이 다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고,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다. 그는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을 했다. 그는 전쟁터로 내려가기 전 성벽에서 그리스 진영을 내려다 보았다.
그는 한 번 더, 어쩌면 마지막으로 몹시 사랑했던 안드로마케와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보기 위해 얼굴을 돌렸다. 안드로마케는 트로이군이 후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공포에 질린채 싸움을 지켜보러 나왔던 것이었다. 그녀 곁에는 꼬마 아들을 안은 하녀가 있었다. 헥토르는 미소를 띠며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안드로마케는 남편의 손을 잡고 울었다.
“내겐 남편이면서 아버지고 어머니고 오빠 같던 당신, 여기 우리와 함께 있어줘요. 날 과부로, 당신 아들을 고아로 만들지 마세요.”
헥토르는 안드로마케의 손을 정답게 꼭 잡으면서 말했다.
"나는 트로이, 자랑스러운 트로이의 왕자요. 내 가족만을 위해 비겁하게 전쟁이나 지켜볼 수는 없소. 트로이의 왕자답게 용감하게 싸우다 장렬하게 죽는 것이 트로이의 명예, 트로이 왕자의 명예, 내 가족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오.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이란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오. 비열하게 죽음의 문으로 밀려 들어 가느니 보다는 당당하게 대의를 위해 살다가, 최선을 다해 죽음과 맞서다가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란 말이오. 나는 트로이의 왕자요. 당신이 트로이의 딸이듯이 트로이의 모든 여인들 역시 트로이의 딸이오. 내 아들 아스티아낙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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