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들리는 상여 속에 누워 있으니 마치 맨몸으로 물결을 타고 있는 것 같구나. 망망대해라도 건너가는 것 같고, 어릴 적 누워 있던 요람 같기도 하고, 이토록 편안한 휴식을 왜 내게는 그토록 늦게야 허락한 것인지 하늘이 원망스럽구나.”(15쪽)
이 여자, 아이를 넷이나 낳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저 집안 구석에 세워둔 문갑이라도 대하듯 무심한 남편의 눈길을. 헌데 그 사람을 담장의 구멍으로 스치듯 보고난 뒤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른 명태만 같던 몸에 갑자기 물줄기가 생긴 것 같았다. 쉰 중반쯤 됐을 때부터 살림을 큰며느리에게 물려주고 문간방에 틀어박혀 수의 짓는 일을 시작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은 간절하고 서글프다.

이어지는 ‘그 남자의 방’은 ‘유인 김소희’의 현대판 남자 버전이다. 이번에는 화자인 딸의 아버지 ‘그 남자’가 멀쩡하게 은행원으로 근무하다 갑자기 모든 걸 다 정리하고 외항선 갑판원이 되어 가족 곁을 떠나버린다. 가장 상처받은 건 당연히 어머니였지만, 그 아버지의 딸인 화자도 깊은 내상에 구멍이 뚫린다. 그리하여 그 남자, 아버지가 오대양을 떠돌다 돌아와 세상과 절연한 채 도를 닦듯 틀어박힌 오피스텔의 옆 건물에 방을 얻어 딸이 하루종일 그 남자를 관찰하는 이야기다. 이 남자, 크게 보면 ‘유인 김소희’이긴 한데, 좀 더 현대적인 ‘존재의 구멍’에 관한 은유다.
‘검은 강’은 히말라야 트레킹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풍광에 대한 묘사가 매력적이지만, 역시 한 남자와 엇갈리게 소통하는 절친했던 두 여성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꽃 진 자리’는 컨테이너선을 타고 나아가는 망망한 인도양 묘사가 압권이다. 그렇긴 해도 역시 남편의 파산 국면에서 다른 소통 대상이 등장한다. ‘능소화’ ‘장마’ ‘빈방’도 이야기는 다르지만 같은 변주곡이다.
완전한 소통을 원할수록 모든 존재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불행은 줄어들 테지만,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그 불행에 더 예민하다. 김이정은 “이 소설들을 쓰면서 내가 받은 큰 위로가 다른 이에게 전해져 작은 위안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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