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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1975년 박정희­YS 회동을 되새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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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1-14 16:36:04 수정 : 2010-01-14 16: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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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감상적인 영수회담

정치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
1975년 5월 21일 청와대에서 이뤄진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김영삼(YS) 신민당 총재의 단독 회동은 지금도 논란거리다. YS는 회동 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대정부투쟁의 강도를 낮춰 오해를 샀다. 금품수수설 등 온갖 의혹이 난무했다. 박 대통령이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하는 등 유신독재의 고삐를 한층 조여가는 상황에서 야당 총재가 배석자 없이 대통령과 단독 회동을 하고 난 뒤 노선을 급선회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전천실 논설위원
YS는 회담 9년 뒤에 다음과 같이 털어놨다. “박 대통령과 나는 배석자 없이 집무실인가, 넓은 방에 단 둘이 있었습니다. ‘사모님께서 불의의 변을 당하셔서 무어라 위로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내가 먼저 정중히 인사를 했지요. 박 대통령의 눈에 한순간 눈물이 맺혔습니다. 박 대통령은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어요. ‘인사를 해줘 고맙습니다. 제 처가 죽고 난 뒤부터 꼭 절간에서 혼자 사는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은 창 밖의 단풍나무에 앉아 있는 새를 바라보며 ‘이렇게 큰 집에서 혼자 사는 것이…’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어요.”

참으로 감상적이고 인간미가 넘치는 회담이 아닐 수 없다. 여야 영수회담에서는 극히 보기 드문 풍경이다. 이날 회담이 정치적으로도 성공한 회담으로 평가되는 것도 흥미롭다. 회담 후 경위야 어찌됐건 일정 기간 정국이 풀리는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솔직함이 통했다고나 할까.

30년도 한참 넘은 일을 되새기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세종시 문제를 놓고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간에 오가는 공방이 너무 삭막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수정안에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고 이 대통령은 그런 박 전 대표에 대해 섭섭함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한나라당 쪽에서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부족할 판에 이러고 있으니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다는 한탄이 나온다.

원인은 많다.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쌓인 감정의 찌꺼기가 아직 말끔히 정리된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신뢰관계도 돈독하지 않다. 무엇보다 힘의 균형도 어느 한 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지 않고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물론 의견은 다를 수 있고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박 전 대표의 말대로 세종시 문제는 원칙과 약속의 문제다. 그래서 타협의 여지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갈등 양상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처럼 서로가 회동 자체를 도외시하고 양 진영 간의 패싸움 방식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두 사람의 정치 스타일이 세종시 문제 해결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솔직히 두 사람을 인간미가 돋보이는 정치인으로 분류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감상적으로만 접근해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가슴을 연 인간적인 접근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정치도 인간이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만나서 얘기하고 인간적으로 설득하려는 자세 자체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국민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대통령이 먼저 변해야 한다. 읍소라도 해서 박 전 대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박 전 대표가 갖고 있는 여러 의구심을 직접 풀어주는 일도 해야 한다. 또 세종시 문제를 경제논리로만 바라보려고 해서도 안 된다. 세종시 문제는 기본적으로 정치 문제다. 이 대통령은 YS를 만날 때의 박 대통령의 심정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표는 회동의 의미를 평가절하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무리 반대한다고 해도 타협과 협상의 가능성까지 닫아놔서는 안 된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약속과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 다른 방법은 없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YS는 2001년 발간된 회고록에서 박 대통령과의 회동에 대해 “박정희가 그때 흘린 눈물이며, ‘대통령 오래 할 생각 없습니다. 민주주의 하겠습니다’는 말은 지금 생각하면 나를 속이려고 꾸며낸 거짓말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누가 속이고 누가 속았겠는가. 정치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임을 실감할 뿐이다.

전천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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