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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은 세파에 찌들고 고독한 악의 화신”

입력 : 2009-12-18 00:05:06 수정 : 2009-12-18 0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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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 화담역 맡은 김윤석
영화의 완성도와 캐릭터의 존재감을 살릴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
초로의 남자가 레스토랑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다. 카메라는 이내 피와 시체가 즐비한 식당 곳곳을 훑는다. 자리에서 일어선 남자는 식당문 한 편에서 숨죽인 채 떨고 있는 소녀를 발견한다. 극도의 공포로 뒤덮인 소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남자는 무심하게 묻는다. “몇 살이지?” 소녀가 11살이라고 답하자 남자는 권태롭게 한마디 툭 던진다. “더 살아도 아무 것도 없단다.”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을 둘러싼 전우치와 화담의 500여년에 걸친 숙명의 대결을 그린 ‘전우치’는 전율이 일 정도의 김윤석(41) 연기를 다시 만끽할 수 있는 기회다. 김윤석은 이 영화에서 조선 최고의 도사였으나 온갖 요괴를 부릴 수 있다는 만파식적을 알게 된 뒤 서서히 내재된 악을 발산하는 화담 역을 맡았다. 연기 외적으로 ‘전우치’는 처음으로 갓 쓰고 도포를 입어야 했던 기분좋은 도전이었고 근 한 달 동안 와이어에 매달려야 했던 고생이었으며 데뷔 이후 처음 여배우와 입맞춤한 황홀한 경험이었다고 말하는 김윤석을 최근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전우치’에서 무심하고 쓸쓸한 느낌의 악의 화신 역할을 맡은 김윤석은 “영화의 완성도와 캐릭터의 존재감을 살릴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항상 나 자신을 돌아보고 직시하고 준비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남제현 기자
‘전우치’에서 화담은 주인공 전우치의 대척점에 선, 섬뜩한 ‘악의 화신’이 아니다. ‘선과 악의 공존’이란 말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왠지 무심하고 쓸쓸한 김윤식표 악인이다. 전우치와 함께 봉인된 만파식적 나머지 조각을 차지하기 위해 500년이라는 세월을 감내해온 화담이 현대에서 처음 등장하는 레스토랑 장면이 대표적이다. 김윤석은 화담을 ‘염세적 허무주의자’라고 설명했다. 평소 촬영장에서 감독, 동료 배우들과 영화와 캐릭터에 관한 논의를 즐긴다는 그는 최동훈 감독에게 레스토랑 장면에 “몇 살이지?”란 화담 대사를 넣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조선 최고의 도사 화담은 공명(세상)과 예의(인간)를 중시한 ‘우도방주’입니다. 전우치는 영혼의 자유로움을 추구한 ‘좌도방’ 수제자였고요. 유혹에도 자유로운 전우치와 달리 화담은 그러하질 못해요. 화담이 만파식적을 차지하기 위해 500년을 기다리면서 목도한 인간과 세상이 구제불능이었다는 데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한 아이에게 나이를 물은 뒤 “(병든) 할아버지 잘 돌봐드려라”라고 자상하게 말을 건넸던 화담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욕망은 만파식적으로 모든 요괴를 불러내 인간과 세상,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끝장내겠다는 것 뿐입니다.”

2001년 영화 ‘베사메 무쵸’를 시작으로 연기 영역을 연극 무대에서 스크린, 안방극장으로까지 넓힌 김윤석은 어느덧 충무로의 대표적인 ‘흥행 보증수표’가 됐다. ‘타짜’와 ‘추격자’, ‘거북이 달린다’ 등 최근 출연작이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즐거운 인생’과 ‘천하장사 마돈나’ 등 흥행이 안 된 영화들도 작품성과 완성도 측면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의 첫 대작(약 150억원) 출연작인 ‘전우치’는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를 연출한 최 감독과의 각별한 인연과 무한한 신뢰(2003년 연극 ‘의형제’에서의 김윤석을 보고 ‘범죄의 재구성’ 오디션을 제안했다는 최 감독은 그에 대해 ‘화면을 장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배우’라고 평했다)가 우선한 영화이지만 그의 작품 고르는 눈은 정평이 나 있다. 그 비법은 뭘까.

“시나리오 대사를 먼저 봅니다. 입에 착 달라붙는 말맛 여부는 물론 그 순서와 행간의 의미까지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최동훈 감독이나 나홍진 감독(‘추격자’)이 쓴 시나리오만 보면 감독이 얼마나 해당 영화를 이해하고 있고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고 있는지를 대번에 알 수 있지요.” 김윤석은 ‘전우치’에서도 “어미 새가 둥지를 떠나면 아기 새가 슬픈 법이지” “누구나 마음 속에는 짐승 한 마리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 등 고어가 주는 말맛과 ‘엇박’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했다.

연기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배우지만 김윤석이 털어놓는 연기 비결은 사실 변변찮다. 영화 속 인물로 제대로 살기 위해선 그 매개가 되는 자신을 정확히 바라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평소 연기자 김윤석과 생활인 김윤석을 잘 구분할 수 있는 관심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극중 인경(임수정)과의 키스신이 “그간 수차례 희망을 피력해온 ‘멜로 연기’의 맛보기냐”는 농에 김윤석은 “멜로연기를 하고 싶다는 얘기는 별 생각없이 꺼낸 말”이라고 웃으며 “관객으로부터 ‘김윤석이 맡은 등장인물은 늘 존재감이 느껴진다’는 말을 듣는 게 유일한 희망사항”이라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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