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완성도와 캐릭터의 존재감을 살릴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 초로의 남자가 레스토랑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다. 카메라는 이내 피와 시체가 즐비한 식당 곳곳을 훑는다. 자리에서 일어선 남자는 식당문 한 편에서 숨죽인 채 떨고 있는 소녀를 발견한다. 극도의 공포로 뒤덮인 소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남자는 무심하게 묻는다. “몇 살이지?” 소녀가 11살이라고 답하자 남자는 권태롭게 한마디 툭 던진다. “더 살아도 아무 것도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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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우치’에서 무심하고 쓸쓸한 느낌의 악의 화신 역할을 맡은 김윤석은 “영화의 완성도와 캐릭터의 존재감을 살릴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항상 나 자신을 돌아보고 직시하고 준비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남제현 기자 |
“조선 최고의 도사 화담은 공명(세상)과 예의(인간)를 중시한 ‘우도방주’입니다. 전우치는 영혼의 자유로움을 추구한 ‘좌도방’ 수제자였고요. 유혹에도 자유로운 전우치와 달리 화담은 그러하질 못해요. 화담이 만파식적을 차지하기 위해 500년을 기다리면서 목도한 인간과 세상이 구제불능이었다는 데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한 아이에게 나이를 물은 뒤 “(병든) 할아버지 잘 돌봐드려라”라고 자상하게 말을 건넸던 화담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욕망은 만파식적으로 모든 요괴를 불러내 인간과 세상,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끝장내겠다는 것 뿐입니다.”

“시나리오 대사를 먼저 봅니다. 입에 착 달라붙는 말맛 여부는 물론 그 순서와 행간의 의미까지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최동훈 감독이나 나홍진 감독(‘추격자’)이 쓴 시나리오만 보면 감독이 얼마나 해당 영화를 이해하고 있고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고 있는지를 대번에 알 수 있지요.” 김윤석은 ‘전우치’에서도 “어미 새가 둥지를 떠나면 아기 새가 슬픈 법이지” “누구나 마음 속에는 짐승 한 마리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 등 고어가 주는 말맛과 ‘엇박’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했다.
연기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배우지만 김윤석이 털어놓는 연기 비결은 사실 변변찮다. 영화 속 인물로 제대로 살기 위해선 그 매개가 되는 자신을 정확히 바라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평소 연기자 김윤석과 생활인 김윤석을 잘 구분할 수 있는 관심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극중 인경(임수정)과의 키스신이 “그간 수차례 희망을 피력해온 ‘멜로 연기’의 맛보기냐”는 농에 김윤석은 “멜로연기를 하고 싶다는 얘기는 별 생각없이 꺼낸 말”이라고 웃으며 “관객으로부터 ‘김윤석이 맡은 등장인물은 늘 존재감이 느껴진다’는 말을 듣는 게 유일한 희망사항”이라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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