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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잇는 사람들] <12> 민속연 명장 리기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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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2-16 09:31:14 수정 : 2009-12-16 09: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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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름 날려 보내고 하늘에 꿈을 띄우다 “여섯 살 때부터 연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누가 죽었다는 소문만 떠돌던 6·25전쟁 뒤끝에 놀이라는 건 별로 없었습니다. 썰매타기, 연날리기, 자치기… 정도였지요. 그러다가 하늘을 날 수가 없을까,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 모든 놀이문화가 땅에서 이루어졌는데 연만 하늘에서 놀았습니다. 그 환상에서부터 연에 대한 사랑이 시작된 거지요.”

하나 하나 혼을 담아… 민속연 명장 리기태씨가 북촌 한옥 작업실에서 전통연을 만들고 있다.
민속연 명장 리기태(59)씨. 그는 어린 시절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연을 날리는 내내 종일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그 기분이 한 시절에 그치지 않고 평생 그의 업이 돼버렸다. 국내에서는 1년에 열두 번 이상 연날리기 대회에 참관하고(매해 11월에 열리는 서울시민 연날리기대회 심사위원장이다) 해외 연 관련 행사에 참가하느라 20∼30개국은 돌아다녔다. 꿈과 현실의 업을 일치시킨 아주 행복한 사람인데, 무엇 때문에 연이 그리 좋았을까.

그는 1971년부터 본격적으로 연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그해라면 스물하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갔거나 아니면 생업에 복무해야 하는 나이인데 그는 엉뚱하게도 연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그는 두 분의 스승 이름(가산 이용안, 학엄 유재혁)은 반드시 기사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생의 이러저러한 ‘사이’를 구차한 말로 메워주진 않았지만 요약해보면 “만들고 그리고 날리는” 삶은 그때부터 업으로 이어진 것 같다. 그는 스승님은 늘 “자연의 법칙에 반하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했다. 지금 사람들은 바람에 저항한단다. 민속 연이 대중 가까이에 가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로서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대목인 것 같다. 어설프게 전문가만 향유하는 연(제작·날리기) 기술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하는 연 날리기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는 자신의 호 ‘초양’(抄洋·회초리 초, 바다 양이니, 대나무로 대양을 다스리라는 의미다)을 내세우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를 누비는 중이다.

◇서울 북촌 한옥 앞에서 대형 연과 함께 포즈를 취한 리기태씨. 그는 한국인에게 연이란 “애환이 묻어 있는 우리 삶 그 자체”라고 말했다.
“초양 연은 6살짜리 아이들이 만들어도 바로 올라갑니다. 일반 기성품들은 뱅글뱅글 돌다가 떨어져요. 전문가들만 날려야 되겠습니까?”

연을 날리는 데도 이리 복잡한 사정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어쨌든 그는 모든 이들이 편하게 하늘에 꿈을 날리기를 갈망하는 듯하다.

“땅 위의 좁디좁은 공간에서 숨 막히게 살아도 하늘은 다 내꺼다, 이런 생각은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뭐가 도대체 불만이냐, 하늘을 쳐다보면 다 내 것인데…. 마음이 탁 터지고 모든 것을 고백하고 싶은 대상이 하늘입니다. 고개를 쳐들고 자기 이상을 하늘에 갈구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에 위안이 되기 때문에 나는 연을 날렸고 날립니다.”

우리는 통상 연을 거론하면 ‘방패연’을 떠올린다. 가운데 구멍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모든 연이 방패연인 것은 아니다. 한국 전통연은 중앙 구멍 위쪽에 그려진 그림이 연의 명칭을 가름한다. 호랑이 연, 원앙 연, 달 연…. 내년은 호랑이 해라서 호랑이 연이 올 연말에 각광을 받는 모양이다. 호랑이가 하늘에 드높이 떠서 대한민국 모든 이들의 가슴에 꽉 찬 한과 염원을 다 날려주기를 그는 원한다. ‘리기태’를 시의 소재로 삼아서 황금찬 시인이 썼던 시, 이렇게 흐른다.

“구름의 기인/ 리 기 태/ 그의 연실과 얼레를 보라// 날려 보내라/ 모든 불행을 연에 실어/ 끝이 없어라/ 하늘 위에 피어나는/ 우리들의 내일을/ 저 지중해/ 바다 빛으로 물드는/ 아 꿈이 아니려니// 내일의 병든 구름을/ 실어가라/ 그리고 청정한 우리들의 하늘을/ 연이여 실어오라.”(‘연을 날리며’ 부분)

글 조용호 선임기자, 사진 허정호 기자 hoya@segye.com
◇전통연을 만드는 데 쓰이는 붓과 칼 등 도구들.
◇전통연에 붙일 댓살을 칼로 다듬고 있다.
◇전통연에 붙인 댓살에 명주실을 연결하고 있다.
◇한지에 호랑이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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