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커 경계 늦춰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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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학 |
태풍은 적도 북쪽의 태평양에서 만들어지는 초대형 열대성 저기압이다. 남반부에서 불어오는 고온다습하고 불안정한 남동풍과 북반부에서 불어오는 북동풍이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강력한 회오리 바람이다. 초속 17m 이상의 강풍과 함께 엄청난 양의 비를 뿌리는 것이 특징이다.
태풍의 피해는 엄청나다. 2002년 루사는 하루에 870㎜의 비를 쏟아부었다. 우리나라 한 해 평균 강수량의 70%가 하루에 쏟아진 셈이다. 루사는 246명의 인명과 6조원에 가까운 기록적인 재산 피해를 남겼다. 2003년의 매미도 5조원의 피해를 남겼다. 1936년 8월의 태풍은 무려 1232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전설적인 1959년의 사라호도 849명의 인명과 3000억원에 가까운 피해를 남겼다.
국가태풍센터의 기록에 따르면 1971년부터 30년 동안 발생한 태풍은 매년 26.7개였고, 그중 평균 3.1개가 우리나라에 피해를 주었다. 올해 발생한 태풍의 수는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지금까지 19개의 태풍이 발생했다. 그렇다고 피해가 적었던 것은 아니다. 8월에 발생한 모라꼿은 대만과 중국을 초토화시켰다. 10월에 발생한 18호 태풍 멜로르도 일본 열도를 따라 진행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다행히 시베리아에서 만들어진 차가운 대륙성 고기압이 우리나라까지 확장돼 태풍의 북상을 막아준 덕분에 피해가 없는 한 해를 보내게 된 것이다.
태풍이 엄청난 자연재해를 일으키기는 하지만 언제나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태풍은 지구 환경의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자연 현상이다. 태풍이 적도 지방에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를 지구 전체로 확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제트 기류를 포함한 거대한 대류 시스템에 의한 에너지 확산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적도 지방에 쏟아지는 태양열을 충분히 확산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좁은 지역에 태양 에너지가 지나치게 집중될 경우에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태풍인 셈이다.
태풍은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생태계의 균형이 극도로 불안정한 육지에서 연안 해역으로 흘러들어가는 유기물이 늘어나면 식물성 플랑크톤이 급속하게 증가한다. 여름철 남해와 서해안에 자주 발생하는 적조 현상이 그런 경우다. 적조는 바닷물에 녹아 있는 산소를 고갈시키고 독소를 내뿜기도 해서 수중 생태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친다.
적조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기껏해야 엄청난 양의 황토를 쏟아붓거나 수온이 낮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태풍이 찾아오면 적조는 깨끗하게 해결된다. 부족한 수자원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태풍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는 없다. 태풍의 발생, 이동, 소멸에 대한 정확한 과학적 지식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한 해에 기껏해야 30개 정도 발생하는 태풍에 대해 통계학적인 분석으로 얻은 결론을 너무 강조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우리나라를 지나가는 태풍에 대한 통계적 분석은 큰 의미가 없다. 통계는 표본의 수가 충분할 경우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올해 태풍이 없었다는 사실로부터 내년 일기의 추세를 짐작하려는 노력도 의미가 없는 것이기는 마찬가지다. 세 차례의 경험으로 내년을 예측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덕환 서강대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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