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인쇄·배포 등 곳곳서 관리 '구멍' 드러나

전국연합학력평가 시험문제지 유출 사례가 추가로 드러났다. 고구마 줄기처럼 캐면 캘수록 나오는 형국이다. 온라인 사교육업계 1위 ‘메가스터디’에 이어 2위인 ‘비타에듀’가 시험문제를 미리 입수한 정황이 포착됐다.
◆인쇄소에서도 문제 유출=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는 비타에듀가 2007년 4월부터 지난 14일까지 6차례에 걸쳐 인쇄소 2곳에서 문제를 미리 입수했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해 조사 중이라고 2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비타에듀는 시험 당일 직원을 인쇄소에 보내거나, 퀵서비스를 시켜 문제지를 받았다. 경찰은 비타에듀가 지난 3월11일 경기 평택 모 사립고 교사에게 직원을 보내 문제지를 가져온 정황도 파악했다.
특히 비타에듀 일부 직원이 해당 인쇄소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경찰은 비타에듀가 문제지를 빼돌리기 위해 일부러 이들을 고용했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다. 비타에듀 직원들은 인쇄소와의 친분 관계로 문제지를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일단 비타에듀가 받은 문제지가 인쇄소에서 봉인이 없는 봉투를 그냥 뜯어 꺼낸 것이어서 ‘공무상비밀표시무효’ 등 조항을 적용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비타에듀 측은 고교에서 가져온 문제지에 대해 “교사 책상에서 훔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문제지가 담긴 봉투에 봉인이 없었던 점을 들어 “몰래 꺼냈을 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경찰은 비타에듀 직원이 해당 학교를 찾은 점이 석연치 않아 법망을 피하기 위해 도난사건으로 꾸몄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출제·인쇄·배포 곳곳에 ‘구멍’=지금까지 경찰 수사로 확인된 시험지 유출 경로는 EBS와 인쇄소, 서울의 2개, 경기도 1개 고등학교다. 하지만 허술한 시험 관리체계를 감안하면 더 많은 중·고교 등 학교와 인쇄소, 각 지방 교육청도 연루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서울·경기·인천교육청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방학 기간 시험문제를 출제해 교육청에 배포하기까지 무려 5개월간 장기 관리된 점에 비춰 경찰이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이번 비타에듀 측의 시험문제 유출 사실을 밝혀내면서 전국연합학력평가 시험의 인쇄, 포장·배송 과정이 한꺼번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경찰조사 결과 문제지는 각 지방교육청이 선정한 인쇄소에서 인쇄된 뒤 포장·배송되기까지 단계마다 별도 보안 조치를 적용하지 않았고, 시험지를 담은 봉투의 봉인과 날인절차조차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서울교육청은 문제지 봉투에 테이프만 붙였고, 경기교육청은 봉투에 그냥 담아 배송했다”며 “시험문제 유출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재홍 기자 h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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