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社 단말기 보조금 무려 한해 5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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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현 온라인뉴스부장 |
이동통신사들은 선량한 가입자의 주머니를 털어 신규 가입자에게 한 번에 수십만원씩 도와주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고 있다. 이로 인해 수년 동안 같은 회사의 휴대전화를 묵묵히 사용해 온 소비자는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동통신업계에서는 휴대전화에 가입한 뒤 채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다른 회사로 옮겨 다니는 가입자를 일컫는 ‘메뚜기족’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심지어 짧은 기간 동안 수십만원 하는 신형 휴대전화를 공짜로 받아서 중고로 되파는 ‘폰테크족’도 있다.
이 같은 풍속도는 휴대전화 가입자가 자사로 옮겨올 경우 값비싼 단말기를 ‘공짜’로 주는 이동전화 보조금제도를 실시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이 제도는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이미 시행된 바 있다. 하지만 우리처럼 ‘공짜휴대폰’을 가지고 재테크까지 하는 기발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는 우리의 시장구조에서만 생긴 독특한 모습이다.
메뚜기족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해주는 통계자료를 보면 더욱 더 기가 막힌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집계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번호이동을 한 가입자는 532만1122명. 지난 한 해 동안 819만129명이 번호이동에 동참했다. 또 지난달 휴대전화 번호이동 가입자는 124만9765명이다. 이는 2004년 1월 이동통신 번호이동제도 시행 이후 최대치로, 기존 최고기록이었던 지난 5월의 119만7507명을 넘어선 것이다.
이 같은 메뚜기족이 날뛰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이동통신사의 과당경쟁이 원인이다. 이동통신사 대리점이 모여 있는 서울 용산이나 명동 등지에 나가 보면 휴대전화 대리점들의 호객행위가 한창이고, 공짜휴대폰도 모자라 ‘마이너스폰’도 있다며 행인의 옷깃을 잡는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최근 메뚜기족 등을 막기 위한 조치를 하겠다고 나섰다. SK텔레콤, KT, LG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 대표를 불러 자제를 당부하고, 신규 가입이나 명의 변경 후 3개월 이내에는 다시 번호이동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이동전화 번호이동 운영지침’도 내놨다.
방송통신위의 단속이 있자 이번에는 이동통신사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를 피해 가고 있다. 번호이동 대신, 타사 기존 가입자에게 해지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신규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쓰고 있다. 번호이동 고객을 신규로 위장하는 것이다. 홈쇼핑을 통한 공짜휴대폰도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이동통신사의 가입자를 빼앗으려는 과당경쟁 양상은 방통위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은 보조금제도나 공짜휴대폰은 신규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해 SK텔레콤과 KT, LG텔레콤은 단말기 보조금으로 무려 5조원이나 썼다.
하지만 이를 되짚어 보면 보조금으로 지출된 이동통신사의 비용은 기존 가입자들의 요금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기존 가입자들은 그만큼 통신요금을 할인받지 못하는 셈이다.
가입자들이 낸 비싼 요금 일부가 보조금으로 전용되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메뚜기족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기현상이 계속되는데도 방송통신위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신규가입자 끌어모으기에 혈안이 돼 있는 이동통신사들에게 자율적인 시장질서 확립을 기대할 수도 없다.
방송통신위는 ‘시장자율’이라는 정책기조로 날뛰는 메뚜기족과 폰테크족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이동통신사들이 가입자의 호주머니를 털어 메뚜기족을 도와주도록 방치 할 것인지, 보조금을 줄여 기존 가입자의 요금을 낮추고 신규투자를 유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혼탁해진 이동통신시장을 바로잡기 위한 방송통신위의 강력한 의지가 절실한 시점이다.
류영현 온라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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