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닷컴]
인터뷰 장소에 들어선 문채원은 어딘가 불안한 모습이었다. "앞서 들린 커피숍에서 핸드폰을 놓고와서 그래요"라는 매니저의 말을 들으니 그러한 불안감이 이해가 갔다. 최근 개봉한 영화 '핸드폰'에서 기획사 대표가 커피숍에 핸드폰을 놓고 와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물론 문채원은 바로 전화해 인터뷰 후 핸드폰을 찾아가겠다고 말한 상태였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아직 신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 초 만났던 이미지와는 달리 인터뷰이로서 안정된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곧 한두 질문이 지나가자 연기자로서 작품과 자신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신인이지만 '프로'로 바뀌어가고 있던 셈이었다.
"오래전 '정향'에서 벗어났다. 난 '유승미'다.
문채원은 현재 SBS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 '유승미' 역을 맡아 이승기 (선우환 역), 한효주 (고은성 역)와 같이 호흡을 맞추고 있다. 지난 해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정향에서 현대극으로 이동한 것이다. 물론 이전에 영화 '울학교 이티''와 드라마 '달려라 고등어'를 통해 현대물을 하기도 했지만, 고등학생 모습을 보인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현대극의 성숙한 여인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에 시청자들은 극 초반 우려를 보이기도 했다. 신인의 입장에서 사극의 여운이 강하게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채원은 'No'를 강하게 말했다.
"이전 작품인 '바람의 화원' 영항은 없어요. 그냥 그때는 그 작품을 열심히 한 것이고, 지금은 현재의 작품에 몰두할 뿐이죠. 전 작품의 영향을 없애려고 특별히 노력한 것은 없어요. 물론 '찬란한 유산' 촬영 초반에는 울렁증까지 있었죠. 하지만 전 작품의 영향이 아닌, 작품을 새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런 듯 싶어요. 제가 사극이 잘 어울리는 외모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때는 여성성이 강하고 굉장히 미학적이며 독보성을 지닌 인물이지만, 여기서는 다양한 인물 중에 한명이고 전 그 역할에 충실하는거죠"
어떤 역할이든 쉬운 역을 없다. 배우로서 그것에 잘 어울리도록 노력하고 맞춰갈 뿐이다. 문채원도 이를 안다. 그러나 문채원은 자신과 너무 비슷한 역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숙제가 있는 인물에 도전을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나하고 너무 비슷하거나 그렇고 그런 인물보다는 약간은 숙제가 있는 인물이 재미있죠. 지금 맡은 '승미'가 우유부단한 것도 알았고, 어쨌든 다양한 변화가 있는 인물이고, 극 중 영향을 받는 인물이니까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한거죠. 이런 생각을 가지고 갔는데, 처음에는 부담도 있었죠. 그러나 지금은 많이들 봐주고 재미있어야 하니까, 남은 촬영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죠"
연기를 하는 사람에게 본인의 연기가 만족스럽냐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들 모두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문채원도 자신의 연기가 아쉬운 측면이 있지만,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현실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필요하지만, 그 평가로 인해 발전을 더디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제 연기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면 아쉽죠. 그런데 매번 아쉬울 수는 없어요. 그것은 제가 연기를 못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전 좋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자신감이 없어지잖아요. 자신감이 없어지면 잘 할 수 있는 거, 내가 할 수 있는 것조차 못하잖아요. 그거 쌓이고 쌓이면 정말 못하는거잖아요. 어떤 것이라도 찾아내야죠. 굳이 안 보이는 것을 찾아내는 것은 웃긴 일이지만, 보다보면 좋은 점이 분명 있잖아요. 물론 안 좋은 점은 보완해야죠"
"승미는 악역 아닌 안타깝고 눈물이 많은 역"
드라마가 시작될 당시 문채원은 극 중 악역을 맡았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악역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난해했다. 슬픔을 껴안고 있고, 우유부단함을 껴안고 있으며, 스스로 악해지기보다는 주위 환경이 그녀에게 '악역'이라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문채원 역시 '승미'의 이런 모습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엄마 (김미숙 분)와 싸잡으면 악역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또 후반에 제가 얼마나 세게 나올지 사실 모르겠어요. 그러나 아마 강하게 나올 것은 아닐꺼에요. '승미'는 눈물이 동반되는 사람이에요. 어둡고 슬프고 엄마 등쌀에 못 이기는 인물이죠. 연애도 정상적인 것이 아니잖아요. 난 진심으로 주는데, 환이는 주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니까, 섭섭한 모습을 보이고. 사람들은 악역이라고 말하는데 전 악역이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결국 좋아하는 남자가 주인공인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감지하고나서부터는 거짓말을 멈출 수 없고 그런 '승미'의 모습을 이해해려 노력하죠. 이렇게 하기 위해서 초반에 더 우유부단하게 나온 것이고, 전 그 역에 충실한 것이죠"
사실 이때문에 문채원은 자신과 역할을 일치하는 과정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배우로서 천가지 만가지 표정과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승미'는 놀라고 화내고 울고, 울면서 아파하는 모습이 브라운관에서 보여주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데뷔 초부터 이쁘게 보이려 하지 않았기에 시청자들에게 이쁜 여배우로서 보여지는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배우로서 다소 한정된 감정 표현과 표정은 아쉬운 부분이다.
"회를 거듭하고 젊은 사람 위주로 가면 제가 열심히 해야죠. 정신줄 놓지 않고 앞뒤 다 계산을 하려고 해요. '바람의 화원'만 해도 여자주인공이 딱히 없었잖아요. 근영이도 남장여자였고요. 제일 첫번째 멜로가 저희였기 때문에 그것으로 설명이 다 되잖아요. 그래서 그냥 바로 달려서 20회까지 간 것인데, 이번에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서 나눠서 생각하려고요. 제 스스로 여기까지는 1부이고, 여기까지는 2부라는 등 나눠서 인물간 관계도를 그려야되요. 하여튼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 제일이더라고요"
"순수한 친구들과 연기는 행복, 하지만…"
문채원은 같이 작업을 하는 배우들 복이 좋은 편이다. 작품 자체는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달려라 고등어''울하교 이티' 등에 같이 출연했던 이민호, 박보영 등이 문채원과 함께 스타덤에 올랐고, 한때 '국민여동생'으로 불리우던 문근영과의 호흡도 괜찮았다. 지금도 '찬란한 유산'에서 한효주, 이승기 등 또래와의 연기가 잘 어울리고 있었다.
"저도 같이 하니까 좋죠. 그런데 이런 것은 있어요. 같이 하는 상대 배우가 나보다 나이가 많고, 선배면 제가 연기에 대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티를 낼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작품을 하다보니까 상대 배우가 '언니'누나'하며서 존칭을 붙히는데, 또 이 친구들이 연기로는 저보다 선배니까 불편한 것도 있더라고요. 자존심 그런 것보다는 모르면 모른다고 하기가 말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어요.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선배님'하고 그냥 말하고 더 조언을 구할 수 있는데 그게 참 어려웠어요. 뭐 다 사람 나름이고, 그릇 나름이겠죠"
신인들이 어느 한 작품으로 갑자기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 힘들어하는 반응을 보인다. 관심에 대한 부담도 있고, 차기 작품이나 행동에 대한 부담도 존재한다. '꽃보다 남자'로 뜬 이민호 역시 이같은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러나 문채원은 도리어 이러한 반응을 즐긴다고 말한다. 어쩌면 연예인으로서의 자신의 삶보다는 작품을 하나하나 해가는 배우로서의 자신을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인 듯 싶다.

"전 굉장히 즐긴 편이에요. 재미도 있고, 약간은 얼떨떨함과 동시에 약간의 당혹스러움. 거기에 기분 좋고 행복함도 느끼죠. '바람의 화원'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작품을 하면서 모든 것이 저에게는 다 도전이었어요. 작은 역할이라도 쉬운 것은 하기 싫어했고요. 그냥 제 작품이 충실하려 했죠. 저는 전력 질주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주인 것은 차근차근 밟는 편이죠. '찬란한 유산'도 잘 마무리 하고 싶어요"
장소=린스튜디오
유명준 기자 neocross@segye.com 팀블로그 http://comm.blo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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