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취업박람회도 ‘생색내기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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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SETEC(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장애인 취업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

신생아 때 앓은 황달로 지체장애 2급(뇌병변으로 인한 양손 경직과 보행 불편) 판정을 받은 최모(33?서울 동작구 사당동)씨는 최근에서야 홀로서기를 위해 ‘거만’했던 자신을 낮추기로 했다.
전 직장에서의 전산, 홍보팀장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잊고 새출발을 하기 위해 생산직에도 지원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유명 사립대를 졸업하고 대학원 수료, 캐나다 어학연수까지 한 최씨를 ‘스펙(specification?구직자 사이에서 학력, 토익 점수 등을 일컫는 말)’이 너무 좋다는 이유로 외면했다.
최씨는 “기업체 입사를 위해 남 못지않은 실력을 쌓았지만 번번이 장애인이라는 신분에 발목을 잡혔다”면서 “눈높이를 낮춰 3D(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업종에 취직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고 한숨지었다.
최씨가 이력서를 쓸 때마다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군필 여부’를 표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장애인인 그로서는 당연히 ‘군 면제 사유’를 적어야 하는데 이력서에 ‘장애, 지체장애 2급’이라고 적으면 백발백중 서류심사에서 떨어지고 만다. 다행히 군필 여부를 따지지 않는 회사에 지원하게 되면 면접까지는 간다. 최씨는 번번이 서류심사에서 고배를 마시지만 요즘에도 한 달에 3?4번씩 장애인 특별채용에 이력서를 제출한다. 100만원 남짓인 고용보험금을 타기 위해 구직활동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씨는 장애인 취업 행사가 ‘생색내기’ 사업이라는 사실에 실망한 적도 많다. 그는 지난해 한 구청 주최로 열린 ‘장애인 취업박람회’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력서를 들고 한 금융회사 부스를 찾았다.
그러나 담당자는 그 자리에서 최씨가 낸 이력서를 본 후 ‘이력서 잘 받았습니다. 이번 정기모집 때 다시 이력서를 접수하십시오’라며 차갑게 말했다. 기업들은 회사 이미지 제고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장애인 취업박람회에 참가는 했지만 실제 장애인을 채용할지는 아직 결정하지도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최씨는 1995년 대학에 입학해 경영학을 전공했다. 1999년 졸업 후 외환위기 여파로 취직이 어렵자 대학원에 진학했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관광정책을 전공했다. 항공기 이용객들의 설문을 분석한 ‘항공사 서비스 만족도’라는 논문으로 대학원을 졸업했다. 항공사에 근무하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국내 항공사의 ‘장애인 특별채용’을 노려 지원했지만 쓴맛을 보았다. 한 면접관은 최씨에게 “청소나 줄서기, 안내 같은 일도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최씨는 “장애를 가진 이들은 열심히 공부를 하더라도 전공에 맞춰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며 “그렇다 보니 가끔 대학생활을 후회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취직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별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며 취재진의 사진 취재 요청을 한사코 거부했다.
특별기획취재팀=염호상(팀장)·박성준·조민중·양원보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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