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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 지음/유기훈 그림/아이세움/9500원 |
‘뒤주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지만, 실상은 별로 안 그렇다. 부자들은 대개 더 부자가 되기 위해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예사롭지 않게 생각한다. 아니,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더 부자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가난한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가난을 겪은 사람이나 지금도 가난한 사람이 이해한다. 또 미력하나마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아버지의 자전거’는 바로 그런 이야기다.
“우리 집은 고물상을 합니다. 아버지는 낡은 자전거를 타고다니며 고물을 수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자전거가 사라졌습니다. 고물 자전거이긴 하지만, 우리 가족한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었지요. 아버지는 온 동네를 찾아 헤맸지만 자전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작이 심상치 않다. 주인공 소년의 아버지는 헌 자전거 한 대로 고물을 수집하는 사람이다. 자전거는 유일한 생계 수단인 셈이다. 그걸 잃어버렸으니 어쩌나. 어린 자식의 눈에도 걱정이 태산이다.
“며칠 뒤, 나는 학교 앞에서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의 자전거가 아버지의 자전거임을 단박에 알아보았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고, 아버지는 나를 앞세우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솜사탕 아저씨는 자전거 뒤에 쪼그리고 앉아 반찬이라곤 달랑 김치 하나로 밥을 먹고 있었다. 아기를 등에 업은 아주머니와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돈을 마련해야 할 텐데…유정이가 요즘 들어 부쩍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다음달에는 꼭 수술을 받을 수 있겠죠?…너무 걱정하지 말아요…조금만 더 고생하면…우리 유정이 병원비 마련할 수 있으니까.”
눈물이 맺힌 아주머니 등에는 추위에 얼굴이 새파랗게 얼어붙은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아버지는 소년의 손을 끌며 “집에 가자. 우리 자전거가 아니다”고 말한다.
소년은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못해 바보같이 느껴진다. 누가 봐도 아버지의 자전거가 맞는데, 아무 말 못 하고 돌아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전거를 잃어버린 아버지는 맨손으로 일을 하느라 그해 겨울을 어느 해보다 힘겨워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전거에 대한 아쉬움과 원망이 희미해질 무렵,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 이른 새벽 아버지의 자전거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누군가 살금살금 들어왔다 나간 발자국이 눈 위에 다문다문 찍혀 있고, 자전거 뒷자리의 까만 비닐봉지 안에는 빨간 사과들이 얼굴을 비비며 앉아 있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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