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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일인의 장례식, 하늘로 가는 아우토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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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2-25 17:44:21 수정 : 2009-02-25 17: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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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숲 속에 비석들이 보인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울타리를 사이에 둔 이웃에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여름이면 태양을 벗 삼아 자리를 깔고 잔디위에 누운 채 담 너머로 정담을 나누기도 하고 할머니네 집 Garten(정원)에서 뛰어 놀던 닭이 알을 낳으면 나누어 주시기도 하시던 할머니였다.

한참은 보지 못했다. 연말이 가까워오면 교회에서 Totensonntag이라고 하여 한 해 동안 죽은 영혼을 추모하는 예배를 드린다. 그 때야 그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 알았다. 독일의 장례식은 대체적으로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들끼리 조용히 치른다. 그렇다 할지라도 어떻게 담을 사이에 두고 있는 이웃이 상을 당했는데 모를 정도로 조용히 치를 수가 있었을까?

독일은 70%가 넘는 국민이 기독교인이고 삶의 기본 정서가 성경으로부터 왔다. 기독인이든 아니든 죽은 후의 절차는 대체적으로 교회에서 치른다. 그래서인지 목사관을 (Pfarreramt)목사관청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 독일을 상대로 싸움을 해서라도 외국인의 권익을 찾아 주셨던, 이방인을 사랑하는 한 할머니의 장례식이 있었다. 생전에 찾아뵈올 때면 독일식이긴 하지만 당근과 야채가 들어간 닭백숙을 손수 만들어 놓으시고 직접 썰어서 넣어 먹으라고 생마늘 한쪽을 건네주시던 분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분들이 장례식에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함께 기도하였다.

일반적으론 공동묘지(Friedhof)에 있는 Kapelle(예배당)에서 장례식(Trauerfeier)을 하고나면 매장을 한다. 오늘은 그 분께서 다니시던 교회에서 장례식을 하였다. 한쪽 모퉁이에 자리한 테이블 위에 그 분의 사진과 꽃병에 있는 한 송이의 꽃과 외롭게 느껴지는 하나의 촛불이 놓여 있는 것 외에는 예배를 드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유가족인 남편도 딸도 모두들 평상시 입던 옷을 입고 있었다. 먼저 화장실의 위치와 식이 끝나면 간단한 식사가 준비가 되어있다는 안내부터 하는 것이 조금은 색다르게 느껴졌지만 유가족을 위한 기도와 찬송, 망인에 대한 약력을 소개하는 것이 전부였다.

구루마를 탄 운구 행렬이다. 우리처럼 가다가 멈추는 일은 없다. 하늘로 가는 아우토반이다.

병원에서 돌아 가셨다. 망인이 원하시던 평상시 옷으로 갈아입고 양발도 신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처럼 얼굴은 가리지 않은 채 꼭 잡은 양손을 가슴 위에 올려놓고 약간의 단장을 한 뒤, 공동묘지에 있는 Kapelle의 영안실에서 오늘을 기다리셨다. 그렇다고 우리네처럼 유족들이 밤새워 빈소를 지키지는 않는다.

보통 거주지역의 공동묘지에 잠들지만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 묘지를 선택했다고 한다. 우리가 공동묘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교회에서 장례식을 마쳤기 때문인지 운구를 시작했다. 울창한 숲 속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나무들 사이사이로 다양한 묘석들이 보였다. 2000년 이후 시작하여 대다수의 주에서 허용하고 있는 수목장도 있었다.

수목장(Baumgräber)이다. 사진 중앙의 유리로 된 게시판엔 망인들의 이름과 번호가 적혀있다. 그렇다면 흙에서 와서 본향으로 돌아간 망인들이 잔디로 보이는 이 땅 속에 흔적도 없이.....

망인의 관과 평상복차림의 유족들. 사진 왼쪽엔 장미꽃과 흙도 준비되어 있다.

이미 준비된 묘지에 관을 올려놓고 짧은 예식을 갖춘 후 한 친구가 보내는 글을 읽었다. 하관을 한 다음 한 삽의 흙과 준비 되어져 있는 장미꽃 한 송이씩을 관 위에 뿌리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자신들이 준비 해 온 꽃들을 고인에게 바치기도 하였다. 한 줌의 흙을 뿌리고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친구인 듯, 어느 할머니의 애절한 노래는 눈시울을 적셨다.

그리고는 묘지를 떠났다. 슬픈 뒷모습만을 보이며  냉정하게 떠났다. 아무도 남지 않았다. 이제 일꾼들이 흙을 덥고 정리하는 것만 남았다. 이것이 내가 오늘 본 독일 장례식과 매장의 전부다. 지역마다 가정마다 다를 수가 있겠지만 우리네의 복잡하고 형식적인 절차를 보아왔던 내겐 무엇인가 빼 먹은 듯한 느낌이다. 그러기에 내 이웃의 할머니가 돌아 가셨음에도 알지 못했다는 것을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옆 자리도 아닌 할머니가 묻힌 바로 이 자리에 남편도 형제도 자식도 같이 묻힐 수 있다고 한다.

묘비에 여러 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대로 가족들이 함께 묻히는 가족묘다.

누구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다. 이 순간은 죽는 자의 마음이나 보내는 자의 마음이 일치하는 순간이 아닐까? “조금 만 더 잘 해줄 걸!” 연세가 드신 지인으로부터 “너희가 늙어 봤느냐? 우리는 젊어 봤다”라는 메일을 받았다. 그렇다! 아무도 죽음을 당해 보지 않았다. 그 당함이 오기 전에 베풀며 살자! 할 수 있을 때 효도하며 살자! 그 당함이 임하면 그 때는 이미 늦으리라!

민형석 독일통신원 sky8291@yahoo.co.kr 블로그 http://blog.daum.net/germany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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