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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세기 백제·신라·가야·倭 서남해안 바닷길통해 교류했다”

입력 : 2009-02-23 17:29:46 수정 : 2009-02-23 17: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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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신대박물관 ‘만의총 1호분’ 유적·유물 공개
◇만의총 1호분 석곽
5∼6세기 백제, 신라, 가야, 왜(일본) 등 고대 세력이 서남해안 바닷길을 통해 경제·문화적으로 왕성하게 교류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신대문화박물관이 22일 공개한 해남 만의총 1호분 유적은 백제뿐만 아니라 신라, 일본, 가야 양식을 따르는 범지역적인 유물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발굴 유물 가운데 가장 특이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토우(土偶)가 장식된 서수형토기(瑞獸形土器·술병)다. 통상 서수형토기와 토우는 신라 경주에서만 만들어졌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그런데 백제가 다스리던 해남 지역에서, 게다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두 가지가 결합된 독특한 형태로 출토된 것이다. 

◇왜계의 조개팔찌
이 서수형토기는 상형토기로서 경주 금령총 기마인물형토기(국보91호)와 김해 기마인물형토기(국보275호) 등과 상통한다. 이번 발굴작업을 이끌고 있는 이정호 동신대 교수는 “서수형토기가 경주 밖에서 출토된 사례가 없으며, 특히 토우와 결합된 형태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유물들은 당시 해남 지역을 다스렸던 재지세력(지역에 거주하는 세력)이 백제, 신라, 가야, 왜와 정치적·경제적 교류를 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신라는 중국과 교류하기 위해 바닷길 확보가 매우 중요했고, 이는 왜도 마찬가지였다”며 “해남 지역 재지세력은 신라, 왜 등과의 중개무역 등을 통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상당한 세력을 쌓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수진 학예연구사도 “4개국 유물 양식이 한 곳에서 발견된 것은 무척 이례적”이라며 “백제가 지배적인 문화가 아니라 여러 문화가 활발히 교류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신라 양식인 토우장식 서수형토기    ◇해남 지역 토기       ◇신라계 가야토기
무덤 양식도 기존 것과는 다소 다른 양식이다. 발굴조사단은 ▲목관과 석곽(石槨) 사이의 측벽에 판석을 채운 점 ▲석곽의 뚜껑돌과 목관 사이의 공간까지 점토로 밀봉한 점 ▲석곽 바닥에 판석을 깐 점 등은 백제나 가야, 신라, 일본 등의 기본적인 묘제와는 다른 독특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해남 만의총은 1597년 발생한 정유재란당시 왜군과의 싸움 도중 전사한 이 지역 의병들의 시신을 합장한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었으며, 또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몰뫼, 몰무덤, 말무덤 등으로 불려온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고분으로도 추정되고 있었다.

이 교수는 “만의총 1호분은 5세기 후반∼6세기 초반에 삼국시대 고분으로 조성된 후 정유재란 시 희생된 순절 의병을 재차 매장한 복합유적으로 그 역사성이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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