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철수 막으려 전작권 반환 교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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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외교안보연구원의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직원들이 30년 시한을 넘겨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를 살펴보고 있다. 송원영 기자 |
◆KAL기 사건 한·소 관계 진전 계기로=78년 4월20일 파리를 떠나 경유지인 알래스카 도착을 앞둔 대한항공 보잉 707기가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 KAL기는 출격한 소련 공군기의 공격을 받고 무르만스크 남쪽 200마일 지점의 얼음호수에 비상착륙했으며, 이 과정에서 승객 2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78년 5월4일 작성된 외무부 문서에 따르면 당시 우리 정부는 소련이 이 사건을 처리하면서 승객과 승무원을 무사히 돌려보낸 것을 평가하고, 한국 정부를 호의적으로 의식했다고 판단했다. 외무부는 특히 “소련이 최고간부회의 의장 담화와 함께 코시킨 총리 등 최고층이 나서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취급한 점, 그리고 시종 정중한 태도를 유지한 것을 고려하면 한·소 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중앙정보부는 소련과의 관계 개선이 추진될 경우, 미국이 이를 빌미로 북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중정은 ‘미국 차관보, 한·소 접근에 대한 우리 측 견해 타진’ 문서에서 “리처드 홀브룩 차관보의 말을 분석해 보면 한국과 소련의 접근이 계속 확대돼 나갈 경우 미국도 북괴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려는 면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면서 “소련에 대한 직접 접근 노력은 미국과 중공의 반발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슬아슬했던 한미 관계=미 국무성은 박정희정권 말기였던 78년 2월 미 의회 제출용으로 작성한 ‘각국의 인권문제에 관한 보고서’에서 열악한 한국의 인권실태를 보고했다. 그 안에는 ▲학생 데모를 한 자들은 구타당하거나 신체적 학대의 위협을 받았으며 ▲정치적 성격의 재판에서 판사나 피고인의 변호사·증인에 대해 행정부가 압력을 가한다는 믿을 만한 보고가 있으며 ▲74년 긴급조치 하에서 재판은 특별군사법정에서 공개되지 않고 행해졌다는 내용이 담겼다.
발표에 앞서 보고서를 입수한 우리 정부는 즉각 법무부의 반박 의견서를 작성해 주한 미대사관을 통해 미 국무부에 보냈다. 정부는 “한국에서 고문이 법률로 금지되었고 정부시책으로 위반사항은 엄격히 다스리고 있어 고문은 없어졌으며, 간첩혐의자에게도 고문은 하지 않는다”면서 “법관에 대한 정치적 압력도 사실에 어긋나는 것이며, 그러한 예가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 정책에도 전방위적으로 대응했다. 76년 11월 외무부 문서에 따르면 정부는 군사차관 교섭을 다양화하고 전·평시 작전통제권 반환 교섭에 나서며,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적극적 공조로 미 정책을 전환하려 했다.
이상민 기자 21s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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