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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카를교에서 내려다본 블타바(몰다우)강. 빨간 지붕 건물들을 끼고 흐르는 블타바강을 내려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프라하의 민족음악가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이 들리는 듯하다. |
어떤 이는 바츨라프 광장에서 체코 국민들의 피로 물들인 ‘프라하의 봄’을 떠올리고, 어떤 이는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를 기억한다. 또 많은 젊은이들은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의 로맨스를 추억할 것이다. 피의 혁명을 겪었던 프라하는 이제 최대 관광도시로 변모했고, 모차르트가 사랑했던 음악도시 곳곳에서는 영화인들이 프라하를 필름에 담느라 분주하다.
이처럼 프라하는 혁명의 도시에서 로맨스의 도시로, 음악의 도시에서 영화의 도시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프라하의 야외 박물관 카를교
조각가 로댕은 프라하를 ‘북쪽의 로마’라고 불렀다. 프라하에는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아르누보 등 온갖 양식의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어 도시 전체가 거대한 건축박물관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덕분에 프라하는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영화의 배경으로 단골 등장하기도 한다.
모차르트의 일생을 그린 밀로시 또르만 감독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화한 ‘프라하의 봄’, 톰 크루즈 주연의 첩보 스릴러 ‘미션 임파서블’, 그리고 우리나라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등에는 프라하의 골목 구석구석이 담겨 있다.
이들 영화에서 빠짐 없이 등장하는 곳이 바로 구시가지와 프라하성을 이어주는 카를교(Karluv most)다. 프라하 중심을 가로지르는 블타바(몰다우)강 유역의 13개 다리 중 가장 오래된 카를교는 총 516m 길이에 난간 양쪽 15기씩 총 30기의 성상들이 프라하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줄지어 서 있다. 다리 위에서는 거리의 악사들이 드보르자크, 스메타나의 후예를 자청하며 연주하고 화가들이 관광객의 초상을 그리기도 한다. 그래서 카를교를 걷고 있자면 야외 박물관에 온 듯한 착각과 더불어 소극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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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생가가 있어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황금소로. 카프카는 22번지 하늘색 집에서 6개월간 집필활동을 하며 ‘성’, ‘변신’ 등의 작품을 탈고했다. |
카를교에서 내려다보는 프라하의 아름다움은 붉은 노을이 저무는 늦은 오후부터 어둠이 내려앉은 밤에 절정을 이룬다. 도도하게 흐르던 블타바강은 도시의 조명을 머금고 금빛으로 출렁이며 고풍스럽던 건축물들은 동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성으로 탈바꿈한다.
#1000년 고도 프라하 성
카를교에서 말라스트라나 광장을 지나 10분여 산비탈 길을 오르면 프라하성(Prazsky Hrad) 입구에 다다른다. 대통령궁과 성 비투스 대성당, 황금소로 등 관광명소가 집결돼 있는 프라하성은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네오고딕에 이르는 1000년 이상의 건축사를 웅변하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대통령궁은 유료로 모든 관광객에게 개방한 것도 모자라 그 안에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까지 들여놓았다. 대통령 집무실 앞마당에는 경호원도 없다. 대통령과 총리가 성 비투스 대성당에서 미사를 보는 일요일만 문을 닫을 뿐이다.
대통령궁을 지나면 프라하 대표 건축물인 성 비투스 대성당과 맞닥뜨린다. 성 비투스 대성당은 본래 고딕양식으로 축조됐지만 블라디슬라프 2세 때 후기 고딕양식이 가미되고 1526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르네상스 양식이, 1753년부터 1775년 사이에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도 추가됐다. 프라하 천 년의 역사가 올곧이 새겨진 셈이다. 성 밖에서 올려다보는 대첨탑은 124m 높이로 하늘을 찌를 듯한 위용을 자랑하고 성 안에 들어서면 스테인드 글라스의 아름다움에 또 한번 탄식을 터뜨리게 된다. 프라하성의 위용을 뒤로하고 동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마치 동화나라에 들어선 듯 파스텔톤의 작은 집들이 줄지어선 작은 골목이 나온다.
본래 성에서 일하는 보초병들의 막사로 지어졌다가 16세기 후반 연금술사와 금은세공사들이 살면서 ‘황금소로’(小路·Zlata Ulicka)로 불린 곳이다. 지금은 엽서, 마리오네트 인형, 그릇 등 기념품을 파는 이 작은 골목에 관광객이 붐비는 것은 카프카의 생가가 있기 때문이다.
골목 초입부에 위치한 하늘색 벽면의 22번지 집이 바로 프란츠 카프카가 1916년 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6개월간 머물며 집필활동을 한 곳이다.
구시가지에 살았던 카프카는 이곳을 집무실로 사용하면서 프라하 성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 ‘성’(城)과 인간 실존의 허무와 절대 고독을 주제로 한 ‘변신’을 탈고했다.
프라하(체코)=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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