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브리튼스 미싱 탑 모델'

리얼리티 쇼, 이제는 '과잉생산' 같은데도 외국 TV들은 여전히 별별 프로그램들을 쏟아낸다.
영국 역시 리얼리티 쇼의 천국이지만 얼마 전 꽤 참신하고 의미있는 기획이 눈에 띄었다. BBC의 '브리튼스 미싱 탑 모델(Britain's missing top model)'.
지난주 종영된 이 프로그램은 장애여성 8명을 놓고 최초의 장애인 모델로 데뷔할 1명을 뽑는 경쟁을 담았다. '마리 끌레르' 편집장을 필두로 영국의 유명 사진작가, 캐스팅 디렉터, 여배우 등 쟁쟁한 인사들을 심사위원으로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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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참가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데비(22·왼쪽팔 절단), 제니(22·반신마비), 켈리(24·청각장애), 제시카(19·신경마비), 소피(23·하반신마비), 레베카(27·다리 절단), 릴리(20·청각장애), 켈리(23·왼쪽팔 절단) |
멤버들이 합숙하며 미션을 수행하고 한명씩 탈락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리얼리티 쇼와 전혀 다르지 않다. 첫 미션 '노 메이크업'에서 시작해 란제리 입고 거리로 나서고, 남자 모델과 커플 촬영도 한다. 마지막 남은 두 사람은 전신 누드까지 공개한다.
심사위원들은 모델 세계에서 장애인에 대한 특별대우는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참가자들을 모아놓고 "체력이 부족해서 일을 못할 것" "성격에 문제가 있다" 등 직설적으로 밝히는 것은 가혹해보이기까지 한다. 특정 멤버가 실제로 데뷔하더라도 경쟁력 있는 모델이 될 수 있을지를 놓고 벌이는 심사위원들의 논쟁은 멱살 잡기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매력은 참가자들의 신체적 장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되 비하하지 않고, 참가자들의 신체적 한계를 배려하며 일정을 진행하되 동정하거나 미화하지 않는 '담담함'에 있다.
특히 같은 장애인이라도 어떤 장애를 가졌는지에 따라 묘하게 갈등하는 멤버간 역학관계가 재밌다. 화보촬영 자리에서 청각장애인들을 놓고 다른 참가자들은 "저들은 정상인과 전혀 차이가 없어보이지 않느냐"며 불편해한다. 반대로 청각장애인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얘기하는 다른 멤버들에게 "그러면 난 알아들을 수 없다"고 호소한다.
유일하게 휠체어를 쓰는 소피는 앉은 포즈밖에 취할 수 없자 화가 나 울어버리고 만다. 최종단계에서 탈락하자 "내가 우승자가 아닌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욕을 하고 떠나기도 한다. 당황스럽긴 해도, '진짜' 리얼리티를 보게 돼 흥미를 잡아끈다.

최종 우승은 왼쪽 팔이 없는 켈리 녹스(Kelly Knox)가 차지했다. 그는 당장 '마리 끌레르' 9월호에 실릴 화보를 촬영하며 화려하게 데뷔하게 된다. 프로그램은 끝났고 궁금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그는 세계적 패션지에 등장하는 행운을 일단 얻었지만, 정말 모델로 성공하게 될까?
둘째, 국내 케이블 채널에 수입된다면 어느 정도 반응을 끌어낼까?
우리 TV는 어떨까. 란제리 쇼나 누드 촬영을 하는 장애인을 화면에 담을 수 있을지. 또 적나라하게 화내고 욕하고 질투도 하는 장애인들을 시청자들이 참을 수 있을지. 아직은 좀 먼 얘기 같다.


/ 임현우 whatisthis@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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