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난국을 타개했는지 옛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뜻에서다.
전 세계를 강타한 1차 오일쇼크는 1973년 3분기부터 1974년 1분기까지 일어났다. 이집트·시리아와 이스라엘 간에 4차 중동전쟁이 터지면서 갑자기 발생했다. 산유국들은 미국에 이스라엘을 지원하지 말도록 압력을 가할 목적으로 생산량을 25%가량 줄였다. 배럴당 2.8달러였던 두바이유는 11달러까지 치솟았다.
처음 발생한 오일쇼크에 세계 각국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1979년 1분기부터 1981년 1분기까지 약 1년간 이어진 2차 오일쇼크도 중동권 전쟁 때문에 발생했다.
이란 혁명, 이란·이라크 간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란 혁명정부가 78년 말 석유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배럴당 12.7달러였던 유가는 2년여 동안 최고 42달러까지 올랐다.
우리나라가 이때 큰 충격을 받았다. 79년 6.8%였던 경제성장률은 80년 -1.5%로 추락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충격 전 2년간 평균 7.6%였는데 이후 2년간 평균 24.6%로 치솟았다.
두 차례 오일 쇼크를 우리나라 정부는 물가 강제억제, 유류세 50% 인상, 목욕탕 강제휴무 등 강력한 에너지 절약 대책으로 대응했다. 민간경제까지 통제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차 오일 쇼크 때가 1998년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역설적으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경제는 전문가에게 무조건 맡긴다’는 일관된 방침을 유지하며 고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강력한 안정정책을 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고유가는 공급에서 문제가 발생한 1, 2차 때와는 달리 수요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중국·인도 등 신흥공업국 원유 소비가 급증하고 투기자본이 원유시장에 몰리면서 가격 폭등 현상이 발생한 것.
1, 2차 때보다 짧은 기간에 가파르게 값이 올라 성장 및 물가에 훨씬 더 큰 충격이 예상된다.
홍익대 전성인 경제학 교수는 “1차 오일쇼크 때 영국과 일본의 대응이 상반됐다”고 말했다. 영국은 금리를 뒤늦게 물가상승률을 밑도는 정도로 조금 올렸다가 물가가 크게 오르자 뒤늦게 긴축정책을 실시해 타격이 컸다는 것. 반면 일본은 신속하게 금리를 올리고 강력한 긴축정책을 펴 경제 악영향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과거 경험을 되돌아볼 때 지금은 정부가 강력한 긴축정책을 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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