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월드리포트]美 대선 후보 오바마 부인 미셸 오바마 집중 탐구

입력 : 수정 :

인쇄 메일 url 공유 - +

인종차별… 악성루머… 백인들 질시…
‘검은 재클린’ 미셸, 백악관 안주인 될까
◇미셸 오바마가 지난 6월3일 미국 미네소타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남편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승리가 확정된 뒤 축하 행사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부인 미셸(44)은 1981년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을 때 잊을 수 없는 흑백 차별을 경험했다. 프린스턴대는 압도적으로 백인이 많은 학교였고 그해 전체 신입생 1100명 중 흑인은 94명에 불과했다.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출신 백인 신입생이 룸메이트였는데 이 학생의 어머니는 수개월간 대학본부에 딸의 룸메이트를 백인으로 바꿔달라고 탄원했다.

프린스턴대 농구선수 출신으로 현재 오리건주립대 농구코치인 그의 오빠 크레이그 로빈슨은 프린스턴대 역사상 고득점 4위의 신화적 인물이지만 역시 대학 시절 차별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빈민가 출신 흑인과는 함께 있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대선전이 본격화하면서 미셸은 더욱 높은 인종장벽을 겪고 있다. 첫 흑인 영부인이 탄생할지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미국 미디어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다시피 하고 있다.

온라인 여론조사 전문매체인 라스무센리포트는 지난 9일 미 전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퍼스트레이디 후보 이미지에 대해 조사했다. ‘후보 배우자에 호감이 간다’는 항목에 대해서 공화당 대선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부인 신디가 49%, 미셸이 48%로 비슷했지만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항목에선 신디가 29%인 반면, 미셸은 42%로 비우호적인 응답이 훨씬 높았다.

미셸에 대한 유권자의 반감은 그가 지난 2월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유세를 하면서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조국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다”고 한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케이블 뉴스 프로그램은 미셸의 이 발언을 수없이 반복해 방송하면서 그의 애국심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흑인 영부인 등장 가능성에 대한 미국인의 불편한 심기는 각종 루머만들기에서도 엿보인다. 미셸이 오바마와 함께 다니던 시카고의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에서 ‘화이티(whitey)’라는 용어를 써가며 연설했다는 루머가 지난 수주 동안 공화당원들의 블로그 등을 통해 퍼졌다. 화이티는 백인을 경멸하는 속어다. 오바마 캠프는 지난 12일 인터넷 등에 떠도는 루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웹사이트(www.fightthesmears.com)를 개설하고, 미셸이 화이티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해명해야 했다.

미셸은 “거짓말이 계속 퍼지는 것을 보면서 때때로 놀란다”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 여론 조성에 앞장서고 있는 케이블 뉴스채널인 폭스뉴스도 미셸에 대한 공격 선봉에 섰다. 폭스뉴스는 최근 미셸에 대해 ‘오바마의 베이비 마마’라고 조롱했다. 베이비 마마는 미혼모를 일컫는 모욕적인 말이다. 오바마 의원이 사실상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뒤 두 사람이 주먹을 맞부딪히는 장면을 두고는 ‘테러리스트의 잽’이라고 비아냥거렸다 .
◇미셸 오바마가 남편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과 두 딸인 말리아, 사샤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오바마 캠프는 이미지 개선을 위해 미셸에게 새로운 주문을 했다. 논쟁에서 이기려는 법률가처럼 행동하지 말고 겸손을 앞세우라는 것이다. 미셸의 연설은 유창하고 지적이지만 인종문제를 거론할 경우 너무 직선적이어서 선동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흑인 노예의 후손인 미셸은 시카고의 흑인 빈민가로 유명한 ‘사우스 사이드’ 출신이다. 그는 부모, 두 살 위 오빠와 함께 방 두 칸짜리 방갈로 2층에서 살았다. 시카고 수도국에서 펌프작동 관련 일을 했던 아버지 프레이저 로빈슨은 민주당 지역 책임자였다. 스피겔 카탈로그 가게의 비서였던 어머니 매리언은 학습지를 구해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열성을 보였다.

영재학교인 휘트니 영 매그넷 고교를 졸업한 그는 프린스턴대에 입학했다. 미셸은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인종 갈등을 연구했다. 그는 대학 졸업논문을 준비하면서 프린스턴대 흑인 졸업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흑인들이 대학 졸업 후 흑인 커뮤니티와의 연결고리가 약화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미셸은 졸업논문 서문에서 “프린스턴대에 다니면서 내가 선택한 길은 나를 백인 문화·사회구조에 더욱 융합시키겠지만 그 백인 사회구조는 나를 단지 주변으로 맴돌게 할 뿐 완전히 참여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셸은 하버드대 로스쿨을 다닐 때는 소수인종 출신 교수들을 임용하라고 요구하는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1988년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로펌인 시들리 오스틴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그는 여름철 합동변호사로 고용돼 일하던 미래의 남편 오바마를 만났다. 이 로펌에는 흑인 율사가 두 명뿐이었는데 그는 오바마의 선생 역할을 했다. 미셸은 오바마가 지역봉사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감명받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1992년 결혼했다.

당시 미셸은 매우 가까운 대학친구와 복합경화증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잇따라 사망하자 충격을 받았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됐다.

“이웃을 둘러보게 됐습니다. 그때 내가 배운 기술을 나를 있게 한 지역에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계시 같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리곤 돈이 아니라 열정 때문에 할 일을 찾게 됐습니다.”

미셸은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공공기관에 취업시키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퍼블릭 앨라이스’라는 훈련 프로그램의 시카고 지부를 출범시켰다. 이곳에서 미셸의 도움을 받고 훗날 시카고의 멀티컬처럴 아트 고교 교장이 된 호세 리코는 “당시 미셸은 터프한 남자 같았다. 무엇 하나 빠뜨리는 게 없었다”고 회고했다.

미셸은 이후 시카고 시장 자문관 등을 거쳐 시카고대 의료센터에서 지역업무담당 책임자로 근무했다. 병원 고위인사들이 어린이 병동 기공식을 하기 위해 모여들었을 때 흑인들이 확성기를 틀어놓고 더 많은 일감을 달라며 시위를 벌였다. 이때 미셸이 나서서 시위대에 확성기를 끄도록 하고 면담을 제안했다. 미셸은 계약 시스템을 개정하고 여성과 소수민족들이 운영하는 기업체에 더 많은 일감을 주도록 했다.

흑인들이 많이 몰려사는 병원 주변 지역에서 미셸은 병원의 대변인처럼 됐다. 그는 병원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흑인들의 좌절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막후에서 노력했다. 미셸은 이 지역 출신 흑인 카운셀러들을 훈련시켜 흑인 환자들이 쫓겨나는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병동마다 설명문을 나줘주도록 했다. 병원이 유두종 백신 실험을 할 때 지역 학교장에게 연락해 흑인 10대 여학생을 실험대상으로 차출했는데 이 같은 연구방식을 중단하도록 한 적도 있다.

미셸이 선거전의 전면에 나선 것은 오바마 캠프의 요구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유세를 위해 외박하는 것을 1주일에 이틀로 제한하고 있다. 두 딸(맬리아 앤과 샤사)의 교육 때문이다. 최근에는 유세 일정이 길어지자 아예 두 딸과 동행하고 있다.

잡지 에센스는 2006년 5월 미셸을 ‘세계에서 가장 분발하는 여성 2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여성지 ‘배니티 페어’는 2007년 7월 ‘가장 옷을 잘 입는 세계 10인’ 중 한 명으로 그를 꼽았다. 매거진 ‘02138’(하버드대학 우편번호)은 지난해 9월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하버드대 출신 100걸’ 중 58위에 올려놓았다. 오바마 의원은 4위였다.

오바마 의원이 대통령이 되면 미셸이 소수민족 차별 문제를 일소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보일지 벌써부터 관심사가 되고 있다.

워싱턴=한용걸 특파원 icykarl@segye.com

오피니언

포토

금새록 '해맑은 미소'
  • 금새록 '해맑은 미소'
  • 3년 만에 돌아온 이나영
  • 정소리 '심쿵'
  • 김세정 '아름다운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