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은 어떻게 ‘파워’를 갖게 됐나=‘가루지기’는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변강쇠를 색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작품. 원로배우 이대근의 전작들이 변강쇠의 화려한 활약상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이 영화는 강쇠가 어떻게 힘을 얻었는지를 밝힌다. 말하자면 일종의 프리퀼(오리지널 영화보다 앞선 스토리를 보여주는 영화)인 셈이다.
‘가루지기’에 따르면 애초 변강쇠는 빈약한 남자였다. 말수도 적고 늘 고민에 찬 얼굴로 살아간다. 더구나 좋아하는 여성에게 말도 못 거는 내성적인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떠돌이 도사에게 비책을 전해 듣는다. 마을 성황당 앞에 묻어둔 술을 마시면 양기가 충천한다는 것. 변강쇠는 한 모금만 마시라는 도사의 충고를 뿌리치고 모두 마셔 버린다.
‘아이언맨’은 국내 관객에겐 낯선 존재지만 서구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인사였다. 1963년 마블코믹스의 새 만화 시리즈로 첫선을 보인 이래 수많은 미국 아이들의 마음을 홀렸다. 스파이더맨·엑스맨 등 마블코믹스의 캐릭터 대다수가 영화화된 마당에 ‘아이언맨’의 등장은 늦은 감이 있을 정도다.

‘아이언맨’의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의 매력도 만만치 않다. 40대의 평범한 사람이지만 보통 이상의 인물이다. 원작에 따르면 토니는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를 물려받은 군수업체 CEO이자 어린 나이에 자동차 엔진을 만들고 15세에 매사추세츠공대(MIT)에 들어갈 정도의 천재다. 그뿐인가. 술과 여자를 좋아하며 럭셔리한 삶을 즐기는 한량이다. 철철 넘치는 매력 덕분에 그가 한번 찍으면 안 넘어오는 여성이 없다. 돈 많고 잘생겼으며 유머까지 겸비했는데 누가 안 넘어가랴. ‘아이언맨’의 원작자 스탠 리는 미국의 실존 인물 하워드 휴즈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억만장자이자 발명가이며 모험가에 바람둥이였던 인물로 그의 삶이 ‘애비에이터’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익숙함 벗어난 비전형적 캐릭터=두 작품 모두 파격과 신선함으로 승부를 건다. ‘가루지기’가 변강쇠를 새롭게 해석했다면 ‘아이언맨’은 슈퍼맨·스파이더맨 등으로 이어지는 할리우드 초능력 히어로에 반기를 든 인간적인 영웅이다. 변강쇠가 좀더 진중해졌다면 아이언맨은 다른 ‘맨’들에 비해 어깨에 힘을 뺐다고 할까.
‘가루지기’는 성적 코드만 부각시켰던 기존 ‘변강쇠’시리즈의 에로티시즘을 거부한다. 대신 강쇠의 순애보를 강조하고 조선시대의 생활상과 윤리 덕목, 여성주의 시각에 무게를 싣는다. ‘18세 이상 관람가’임에도 성적인 장면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주로 은유와 상징으로 처리했다. ‘싸움의 기술’로 데뷔한 신한솔 감독은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색다른 코믹 사극을 만들어냈다. 특히 왜소한 체격의 봉태규는 아무도 몰랐던 변강쇠의 소싯적 모습을 잘 소화했다. 하지만 극 종반 방만하게 펼쳐진 이야기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못하는 건 아쉽다.
‘아이언맨’은 만들어진 영웅이다. 운명처럼 슈퍼히어로의 업보를 타고난 기존의 ‘맨’들과 달리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주체적인 영웅이다. 아프간 전장에서 게릴라에게 잡혔다 탈출한 후 개과천선, 세계 평화를 위해 철갑 슈트를 만들어 입기 때문이다. 무기판매로 부를 쌓은 자가 반전 영웅이 된다는 설정은 미국의 아프간전쟁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힌다. 그렇지만 여전히 인간적이다.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는 배트맨이나 엑스맨보다 경쾌하고 흠결 없는 슈퍼맨에 비해선 실수도 많다.
다만 영화가 막 절정 단계에 들어서자 끝나는 느낌이다. 발단과 전개만 있는 형국이다. 시리즈로 제작되니 속편을 기대하라는 노골적인 제스처다. 하긴 일단 데뷔했으니 한번으로 끝내긴 아쉬울 것이다.
이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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