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작품들은 일종의 악마주의를 통해 사회를 풍자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포르노크라테스’, 즉 창부정치가는 그의 작품 세계를 확고히 보여주는 명작이다. 롭스에 따르면, 돼지가 이끄는 대로 벌거벗고 눈을 가린 채 따라가는 창녀처럼 이 사회는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고 있다. 돼지는 무지와 탐욕을 상징하며 천사들이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고 고집스럽게 땅만 바라보고 전진한다. 분노 때문인지 향락에 빠진 것인지 천사들은 맥을 못 춘다. 길 아래엔 예술가들이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다. 사회의 악덕과 부패가 위세를 부리는 가운데 지성인들이 침묵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포르노크라테스의 눈가림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몸이 천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속담처럼 눈은 우리 몸의 주된 감각기관이다. 외부 정보 중 80%가 눈으로 전달되며, 안구의 가장 뒤쪽에 붙어 있는 망막에 모여 있는 1억4000여개의 신경세포가 150만개 이상의 정보를 한꺼번에 뇌에 전달한다. 이렇게 정교하고 복잡한 기관인 눈은 인간의 출생 시부터 거의 완벽한 체계를 갖춘다.
눈은 감각 전달의 통로이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눈 한가운데 있는 검은자위인 동공은 카메라로 말하자면 빛의 양을 조절하는 조리개인데, 인간의 동공은 빛의 양뿐만 아니라 감정의 변화에 따라서도 크기가 달라져 소위 ‘눈빛’을 만들어 낸다. 사랑하는 이를 바라볼 때에는 동공이 확장되지만 싫어하는 인물이 TV에 나오면 수축하게 되는 것. 아름다운 눈이란, 단순히 위아래로 큰 것이 아닌, 동공이 큰, 정답고 따스한 눈빛을 가진 눈이다. 그 때문에 그토록 눈에 해롭다는 서클렌즈가 절찬리에 판매되는 아이러니가 지속되지만 말이다.
감각과 감정의 최전방에 있기 때문일까, 눈은 예부터 ‘지혜’의 상징이었다. 중국의 한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창힐은 자그마치 네 개의 눈으로 세상을 관찰했다고 하며,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100개의 눈을 가진 거인 아르고스는 매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고대 인도의 시바신에게는 진리를 볼 수 있는 세 번째 눈이 이마에 있었다고 하는데, 경솔한 자는 이 눈에서 나온 빛에 타 재가 되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지닌 수행의 내공에 따라 안력(眼力)을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고 한다. 육안(肉眼), 천안(天眼), 법안(法眼), 혜안(慧眼), 불안(佛眼)이 그것이다. 인간의 몸에 갖춰진 맨눈을 가리켜 육안, 모든 법도를 훤히 볼 수 있는 지혜로운 눈을 불안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혜의 상징이 가려진 채로, 헛된 지상의 욕망을 좇는 포르노크라테스는 아직 육안에 머무른 것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가려지지도 않았는데 바른 것을 보지 못하고 아름다움을 겉으로 보이는 대로만 인식하는 요즘 세상의 안력은 육안에도 미치지 못하는 눈 먼 수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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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
이제 우리는 미래를 이끌어갈 정치지도자들을 뽑는다. 더 좋은 세상을 염원하는 국민의 마음이 후보들을 향한 탁월한 안목으로 이어지기를, 그리고 그러한 후보가 밝은 혜안으로 국민의 소망을 정책으로 만들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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