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열린 세계 봤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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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목산 개산노전 앞에서 순례단이 고우 스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중국 동남쪽에 위치한 저장(浙江)성 닝보(寧波) 아육왕사. 지난 10일 1600여년 전 동진시대에 창건됐다는 이 절에 들어서니 중국 대선사 대혜(1089∼1163·임제종 양기파)의 너그럽고도 준엄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대혜 스님은 한국 불교의 전통수행법인 간화선이 있게 한 분이다.
한국 불교는 간화선 수행을 재가불자는 물론 널리 일반인에게 확산시키기 위해 간화선 강좌를 개설했다. 또 지난해에는 조계종 총무원과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개발원 주최로 순례단을 구성해 당나라 때 선(禪)을 꽃피웠던 달마 혜가 혜능 등 6대 조사들의 선 수행처를 직접 답사한 바 있다. 올해는 간화선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고우 스님과 무비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선이 열매맺은 남송 시절의 대혜 선사와 고봉 선사의 수행처를 돌아보는 여정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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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이 고봉 스님의 수행처 항저우 천목산 ‘사관(死關)’을 둘러보며 그 의미를 헤아리고 있다. (왼쪽)◇순례자들이 대혜 스님의 선(禪) 체취를 느끼기 위해 저장성 닝보 아육왕사 경내를 열심히 돌아보고 있다. |
아육왕사는 대혜 선사가 67세 때 와서 3년 동안 주석했던 곳. 당시 대혜의 법문을 듣기 위해 1만2000여명의 대중이 양식을 싸들고 찾아와 진을 쳤다고 한다. 아육왕사는 고려 유학승인 의통과 대각국사 의천, 나옹 선사 등이 다녀갔던 절이기도 해 더욱 애착이 간다.
중국의 웬만한 고찰은 한국 절보다 규모가 몇배로 크다. 아육왕사에도 대왕전 앞에 축구장 4분의 1 크기만한 연못(방생못)이 방문객을 압도한다. 전각 양 옆으로 조성된 회랑도 부러운 시설 중 하나다. 현재 아육왕사 뒤편의 전각 장경루에는 50㎝ 높이의 동탑에 부처님의 정수리 사리가 모셔져 있다. 무릎을 꿇은 채 탑구멍으로 보면 천장에 녹두알 만한 진갈색 사리가 매달려 있다. 이날 순례에 동참했던 스님과 불자 등 100여명은 스승의 법구를 친견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열정을 보였다.
이어 들른 천동사는 대혜 스님과 묵조선 최고 어른 굉지 스님의 우정이 어린 곳. 때마침 법당에서 중국의 사부대중 100여명이 모여 예불을 하고 있는데 우렁찬 염불소리가 중국불교의 새벽을 여는 듯했다.
순례단을 이끌고 있는 고우 스님은 “불우한 시대에 태어난 대혜 스님은 깨달음을 위한 투철한 노력과 중생 교화로 일생을 바치며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이튿날 닝보에서 서쪽으로 300여㎞ 떨어진 항저우(杭州) 천목산(1506m)으로 향했다. 천목산은 저장성 최고봉으로, 고려때 대각국사 의천이 지은 고려사와 대혜 선사와 같은 임제종 양기파인 고봉 선사가 주석했던 선원사가 있다. 문화혁명 탓에 옛 고려사 자리에는 호텔이 들어섰고, 지금의 고려사는 항저우시가 120억원을 들여 인근 부지에 복원해 지난해 5월 문을 열었다. 멋없이 큰 중국 사찰만 구경하다가 한국 사찰을 답사한 뒤 지었다는 고려사를 보니 불상의 위치가 낮아 여간 편한 게 아니다. 역시 대중에 격의 없이 다가가려 했던 우리 조상의 심성에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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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저장성 닝보 아육왕사 전경. 대왕전 앞의 커다란 연못이 방문객을 압도한다. (왼쪽)◇순례자들이 고려 때 대각국사 의천이 지었다는 중국 속의 한국절 항저우 고려사에서 윤장대를 돌리고 있다. |
경내에는 의천 대사의 영정도 모셔져 있고, 경전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게 된다는 5층 누각 형태의 윤장대(輪藏臺)도 인상적이다. 사찰을 한국 측에서 운영하는 문제를 놓고 항저우시와 한국 관계자들의 논의가 진행 중인 모양이다.
항저우시가 최근 개방한 천목산은 고봉 선사의 치열한 구도정신이 서려 있는 곳. 산자락에서 버스로 고도 1000여m 지점까지 오른 뒤 도보로 산을 돌아내려가며 시작되는 천목산 고봉 선사 선적지 순례는 감탄 그 자체였다. 온 산에 빼곡한 수령 600∼1000년의 삼나무가 시종을 압도한다. 삼나무는 저마다 질세라 크고 육중한 몸매를 뽐내는데, 유독 한 나무에는 ‘나무의 왕’이라는 뜻의 ‘대수왕(大樹王)’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산허리를 굽이돌며 조성된 돌계단은 8㎞, 2시간30분 거리에 이른다. 산책로에 나무 9그루의 뿌리가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을 보호해 놓고, ‘구룡벽(九龍壁)’이라는 이름으로 의미를 부여한 중국인의 의식구조에 놀라울 뿐이다.
고봉 선사의 천목산 수행담은 신화처럼 전해진다. 한번 오르면 쉽게 내려갈 수 없는 천목산 고봉에서 고봉의 수행 열기는 어땠을까. 당시 제자격인 중봉 스님이 고봉을 평하길, “고봉의 높은 점 하늘과 비교 안 되고, 사관(死關·고봉이 참선하던 토굴)의 험한 점 18지옥과 비교 안 되네”라고 했다던가. 고봉이 산문을 열었다는 ‘개산노전(開山老殿)’과 고봉 묘, 세발지(洗鉢池) 등을 지나 당도한 곳은 ‘고봉탑원(高峰塔院)’이라는 팻말이 붙은 사관. 바로 중봉이 말한 곳이다. 길이 없던 시절, 천길 절벽 바위 사이에 마련된 이 수행처는 그야말로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죽음의 문이었다.
고우 스님은 사관을 말하며 공(空)을 말했다. “중생은 공이 아무것도 없고 허무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불교에서 공은 지혜요 진리”라며 “공을 이해하면 모든 존재가 하나임을 느끼고 공동체 의식도 생긴다”고 말했다.
고봉은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철저히 죽지 않고 사관을 말할 수 없었다. 중생은 닫힌 세계를 봤지만 고봉은 그 안에서 열린 세계, 영원한 세계를 본 것이다. 고봉에게 사관은 곧 깨달음의 세계였다. 공(비움)을 통하지 않고 어찌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까.
한 중년의 보살(여성 신도)이 사관 건너편 절벽을 가리켰다. 삼나무로 둘러싸인 가파른 경사면에 큰 바위가 하나 보이는데, 고개 숙인 부처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른바 ‘불면암(佛面岩)’인데, 그냥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그러고 보니 고봉이 수행하던 곳은 그 자체로 대자연이 만들어낸 커다란 법당이었다. 이곳에서 고봉은 스스로 법(진리)을 구하고, 법을 나누어 주었으며, 법이 되었으리라.
길을 떠나면 누구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여행도 깨달음의 한 도구다. ‘아육왕사-천동사(닝보)-천목사-고려사-정자사-영은사(항저우)-경산사-천령사(쑤저우)’로 이어지는 순례는 3박4일 일정으로 쑤저우에서 끝난다. ‘나’를 찾아 나선 길, 깨달음을 얻기 위한 길에서 순례단은 저마다 가슴이 툭 터지는 감동을 키워가고 있었다.
항저우(중국)=글·사진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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