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어학당 시절, 수업에 몇 번 빠졌더니, 담당 강사가 ‘나랑 같이 자면 수업에 안 들어와도 성적을 주겠다’고 말했다”는 성희롱 발언이 그것. 제작진은 이 내용이 몰고 올 사회적 파장과 그녀에게 닥칠 불이익을 알렸지만 출연자의 요청으로 방송되었고, 해당 강사는 강단을 내려오는 것으로 사건은 결말지어졌다.
여성과 남성의 권위가 동등하다고 평가되는 현대에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한데, 하물며 과거에는 오죽했을까?
오래전부터 여성은 남성보다 약자로, 그것도 성(性)적인 의미에서의 피학자로 그려져 왔다. 역사 속에서 종종 발견되던 여인들의 고통은 로마 역사에 등장하는 ‘루크레치아의 자살’에서 분수령을 이룬다. 대대로 많은 화가들이 그녀를 알몸으로 표현한 데 비해, 색채의 연금술사라 불리는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 속 루크레치아는 명예를 중시하는 우아한 귀부인으로 묘사됐다. 빛과 어두움이 대치하는 공간 속에서 여인은 비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단검을 뽑은 가슴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온다. 깊은 슬픔을 초월한 듯한 표정에는 극적인 아름다움마저 감돈다. 무엇이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녀로 하여금 스스로 소중한 생명을 포기하도록 만든 것일까.
로마 역사에는 ‘루크레치아’라는 여인이 두 명 등장하는데, 한 명은 정숙하기로, 다른 한 명은 악하기로 유명했다. 정숙한 루크레치아는 귀족 콜라티누스의 아내로, 미모와 부덕을 겸비해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로마 황제의 난봉꾼 아들인 섹스투스가 호시탐탐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어느 날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섹스투스가 그녀의 방에 들어와 자신과 동침하지 않으면 남자 노예와 함께 죽인 후에 둘이 통정하는 장면을 목격해 죽였다고 말할 것이라며 공갈 협박을 했다.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생명보다 중요시했던 루크레치아는 결국 짐승보다 못한 섹스투스에게 몸을 허락하고 만다. 그가 돌아간 뒤, 루크레치아는 일가 친척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소상히 알리고는 복수를 청하면서 단검으로 심장을 찔러 자살하였다. 이에 분노한 남편 콜라티누스는 반란을 일으켜 로마 황제의 황위를 박탈하고 공화정을 세우게 된다. 출중한 미모로 인해 능욕을 당했던 한 여성의 억울한 죽음이 결국 제국의 역사를 바꾼 것이다.
힘있는 일방이 상대적으로 약한 상대방에게 가하는 폭력 중에서도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적 희롱과 폭력은 루크레치아의 사례에서 그렇듯 피해자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파괴하기에 더욱 위험천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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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
한 해의 마무리를 앞두고 여기저기서 송년회 준비가 시작되는 조짐이 보인다. 해마다 이맘때쯤 신문, 방송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송년회 자리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관련 사건 뉴스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에게는 불쾌한 기억 정도일지 몰라도, 피해자의 마음과 몸은 어지간한 시간과 노력 없이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된다.
성희롱 경험을 털어놓아 가해자에게 응징을 가했던 외국인 여성이 용감해 보이기는 하나, 그 사실을 털어놓기까지 겪었을 마음의 고통과 이후에 겪었던 보이지 않는 사회적 손가락질은 간과하기 쉽다. 루크레치아의 비극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여성을 향한 진정한 존중과 배려가 절실한 시점이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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