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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순 WSET 대표강사 |
와인은 아무리 마셔도 잘 취하지 않아서 술 같지 않다며, 오로지 높은 도수의 술만 마시던 친구가 병원에서 경고를 받은 후 주종을 바꿔 와인을 마시면서 투덜댔다.
화이트 와인은 시큼해서 싫다던 그 친구에게 신맛이 강하지 않다고 권해준 품종이 바로 ‘게부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였다. 개인적으로는 싱그러운 과일 향에 신맛이 받쳐줘야 화이트 와인이 레드 와인과 다른 상큼한 풍미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신맛이 강한 화이트 와인을 좋아하지만, 바로 그 톡톡 튀는 신맛 때문에 화이트 와인을 싫어하는 사람들(특히 남성들)도 있다.
그래서 강한 신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화이트 와인의 매력을 소개하고 싶을 때 ‘게부르츠트라미너’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자주 추천한다. 이 품종은 독일과 프랑스의 알자스가 주요 산지로 생산량도 적은 편이고 샤르도네나 소비뇽 블랑만큼 전 세계에서 널리 생산되는 품종도 아니다. 발음도 까다로운 이 품종 이름의 앞부분, 즉 게부르츠(Gewurz)는 ‘스파이시하다’는 의미로 실제로 흰 후추나 정향, 팔각, 육두구 같은 향신료 향에 꽃, 향기 그리고 리치 등 다양한 열대 과일의 향기를 품고 있다. 특히 리치나 장미 향 등이 두드러지게 강해서 향기만 맡아도 그 품종을 짐작할 수 있는 이 품종은 입 안에서 신맛이 톡톡 튀기보다는 적당히 과일 풍미와 조화를 이뤄 마시기 편하다. 향신료 맛이 강한 동남아시아 음식이나 중국 음식과도 아주 잘 어울리고, 연세가 있는 어르신들도 권해드리면 대부분 좋아하는 부담 없는 와인이다.
이 품종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청포도 품종이 바로 ‘리슬링’이다. 내가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와인이 정말 맛있구나’ 하고 감탄했던 게 바로 이 품종으로 만든 독일 모젤 지방의 와인이었다. 이에 비해 알자스의 리슬링은 대부분 드라이하며 알코올 도수도 좀 더 높은 편이다. 레몬이나 라임과 같은 감귤 향에 사과나 복숭아, 살구같이 씨가 굵은 과일(stone fruits) 향들이 풍부하며 톡톡 튀는 산미가 받쳐주는 상큼한 와인으로, 병에서 숙성이 되면 싱그런 과일 향 위에 석유(petrol) 냄새와 같은 미네랄 향이 보태지기도 한다.
와인에서 석유 냄새라니? 처음에는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그렇고 이 품종에서 달콤한 스위트 와인이 나온다는 사실에 매우 향긋한 향기를 기대하다가 주유소 근처를 지나갈 때 맡을 수 있는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나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실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다른 화이트 와인에서 경험할 수 없는 그 독특한 향기와 신맛과 과일 맛이 잘 조화를 이루어 입 안으로 기분 좋게 퍼지는 달콤한 리슬링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WSET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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