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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선 교육평론가 |
관련기사를 보는 순간 왕조시대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열린 참모’들로 채워져 있다는 청와대에서 항의가 있었다는 소식은 믿기 어려웠다. 대통령에 대한 인격모독이란 말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나친 반응이다.
‘놈현스럽다’뿐 아니라 ‘검사스럽다’ ‘부시스럽다’ 등도 있다. 모두 우리의 특정 상황을 표현해주는 말들이다. 우리는 이런 표현들을 통해 더욱 실제적인 현실을 이해한다. 또 현재를 설명해 주는 중요한 단서들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좋은 표현들만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표현들이 생성된다. 그 중에는 거북살스러운 표현들도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놈현스럽다’도 그런 예의 하나일 뿐이다.
언어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 숨쉬는 생명체로 자연스럽게 생성, 소멸된다. 즉, 필요에 의해 생성되고 효용 상실에 의해 소멸된다. 위의 표현들은 현재의 우리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 또 우리 모두가 만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특정 표현을 두고 청와대가 시비할 일은 아니다. 사실 국립국어원의 연구자들은 죄가 없다. 이들은 충실히 자신들의 직무를 수행했다. 죄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 우리 모두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시비하는 것은 연구를 제대로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지는 못할망정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니다. 더욱이 파란기와집이 어떤 곳인가. 가장 힘센 사람들만 모인 집이 아닌가. 그동안 수없이 세간을 놀라게 한 사기 사건 중 파란기와집을 사칭하지 않은 사건들이 있었던가. 그런 곳에서 한마디 하게 되면 연구가 제대로 되겠는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연구 결과를 청와대에서 감수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미 만들어진 책자들을 수거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직접 출판물 감수실을 두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또 그렇게 하면 입맛에 맞지 않는 표현은 걸러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번 ‘놈현스럽다’를 두고 보여준 청와대의 태도는 성숙되지 못한 것이었다. 전화 한 통화에 알아서 기는 듯한 국립국어원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자존심은 온데간데없고 눈치만 보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배포된 책의 회수를 검토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전에 커다란 오류가 없는 한 그 결과는 존중돼야 한다. 그것이 연구물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이다.
연구자들 역시 결과로 말해야 한다. 힘이나 권력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연구자들이 무너지면 연구도 무너진다. 나아가 ‘놈현스럽다’란 말을 만들어낸 국민들도 무너지게 된다.
한병선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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