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와 일부분 모두 나선모양 닮았어요” 요즘 건강을 위해 요가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이때 필수품이 바로 요가 매트다. 요가를 끝내면 매트의 부피를 줄여 보관하기 위해 돌돌 마는데 매트의 두께가 고르다면 반듯하게 끝까지 말 경우 일정한 간격으로 말리면서 원기둥 모양이 된다. 매트를 세워 옆면을 잘 관찰하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나선 모양을 볼 수 있다.
이 나선모양은 두루마리 화장지나 둥글게 말아 놓은 각종 테이프 등 생활 속에서 친숙하게 볼 수 있는데 수학에서는 이를 ‘아르키메데스 나선’이라고 한다. 기원전 3세기의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나선’이라는 책에 적어 놓았을 정도로 이미 고대 때부터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종이나 매트를 말지 않고 평면 위에서 이 나선을 그리는 것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어렵지 않다. 직선과 직선 위의 점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아름다운 아르키메데스 나선을 그릴 수 있다.
우선 (1)반직선을 그린 뒤 그 위에 한 점 P를 잡는다. (2)반직선은 점 O를 중심으로 원모양을 그리도록 일정한 속도로 돌린다. (3)동시에 점 P는 반직선 위를 따라 일정한 속도로 화살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 이때 점 P가 그리는 곡선의 모양이 바로 아르키메데스 나선이다.
◇자연계에서 다양한 형태의 로그나선을 발견할 수 있다. 왼쪽부터 앵무조개, 나선은하, 저기압 근처 소용돌이의 모습. |
그림 1은 반직선이 3바퀴(3×360°) 돌았을 때 생기는 모양을 그려 놓은 것이다. 직선 OP의 길이를 r, 점 P의 속도를 α라 하면 회전각에 따라 OP의 길이가 일정하게 증가하므로 r=αθ(θ는 라디안)라는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프를 잘 관찰하면 이 나선의 특징을 직관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 나선은 그 간격이 일정할 뿐 아니라 반직선의 회전수가 증가할수록 전체적인 모양이 점점 원에 가까워진다. 나선의 각 점에서 접선을 그었을 때 생기는 각 α1, α 2의 크기는 모든 점에서 다르지만, 점 P가 중심 O에서 멀어질수록 그 크기가 점점 커져(α1〈 α 2) 결국 90°에 근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돗자리나 매트를 여러 번 둥글게 말수록 그 모양이 원에 가까워진다는 경험도 이를 뒷받침한다.
만약 점 P가 점점 빠른 속도, 즉 속도가 일정한 비율로 증가하도록 반직선 위를 움직인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도 나선 사이의 간격이 일정하게 유지될까? 점 P의 속도가 증가하므로 나선 사이의 틈은 기하급수적으로 점차 벌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그려지는 나선을 로그나선이라 하는데, 아르키메데스 나선과는 모양부터 확연하게 구분된다.(그림 2) 이 나선은 직선 OP의 길이 r이 점 P의 속도 α가 회전각에 따라 일정한 비율로 증가하게 되므로 r=αθ(θ는 라디안)라는 관계가 있다.
이 나선의 성질 중 눈에 띄는 것은 어떤 점에서 접선을 그어도 그 각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점이다.(즉, α1=α 2) 로그나선을 일명 등각나선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로그나선으로는 앵무조개나 암모나이트의 단면, 나선 은하, 저기압 근처에서의 소용돌이 모양 등이 있는데 접선과의 각도가 다름에 따라 그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다.
앵무조개와 같은 연체동물들은 접선과의 각도가 대략 80°∼85° 정도인데 납작하고 빈틈없이 잘 말린 모양으로 자라게 된다고 한다. 반면 사슴의 뿔은 접선과의 각도가 작고 나선의 안쪽과 바깥쪽의 성장 속도가 다름에 따라 나선의 틈이 벌어지면서 자란다.
로그나선이 주목받는 이유는 나선의 중심을 기준으로 작은 부분을 보나 전체를 보나 닮았다는 점이다.
피보나치 수열과 관계 있는 황금나선을 통해 이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한 변의 길이가 각각 1, 1, 2, 3, 5, 8, …이 되도록 정사각형을 그림과 같이 잇대어 그린 후 반원을 연이어 그리면 황금나선이 그려진다.(그림3)
황금나선은 로그나선의 특별한 경우라는 것이 데카르트에 의해 알려졌다고 한다. 황금나선의 바탕이 되는 사각형을 작은 단위로 떼어 관찰하면 어떤 부분을 떼어내어도 전체와 닮았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달팽이의 껍데기, 사슴의 뿔, 해바라기씨의 배열 등은 왜 황금나선과 비슷한 모양을 가졌을까? 그 답은 바로 황금나선이 가진 자기 닮음 성질 때문일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생명체에서 볼 수 있는 황금나선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
생물체가 자신의 내재된 질서로 황금나선을 택했다면 나선 위의 어떤 점에서든 접선과 이루는 각이 같으므로 일정한 방향으로 일정한 모양을 계속 반복하여 복제하기만 하면 전체적인 형태를 유지하면서 자랄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아르키메데스 나선을 선택했다면 성장의 매 순간마다 전체적인 모양과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결정을 내려야만 했을 것이고, 이는 매우 복잡한 일이 될 것이다.
전체와 일부가 늘 닮을 수 있다면 이것만큼 더 간명한 질서가 어디 있을까? 바닷가를 거닐며 무심코 지나치는 조개껍데기도 수학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생명체들의 부단한 흔적임을 이해한다면, 하찮은 조개껍데기 속에서도 우주를 지배하고 각 생명체에 내재된 수학적 질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정미자 신림고 수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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