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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자식을 ''공주''처럼 키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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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02-10 15:16:00 수정 : 2007-02-10 1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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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생존학
강은교 시인·동아대 교수

시들어가는 장미 꽃잎의 살을 물에 적셔주고, 꽃병에 며칠 담겨 있느라고 피곤했을 꽃대의 끝을 잘라준 다음 잘 씻어주고 물도 싱싱한 새 물로 갈아준다. 그리고 나의 가난한 베란다 꽃밭의 ‘가시금작화’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하긴 가시금작화라는 이름은 내가 멋대로 붙여준 이름이다. 가시금작화는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영국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속에 나오는 영국 콘월 지방의 센트 아이브스 벼랑에 핀 꽃인데, 나는 이 꽃에(이름을 모르는 까닭에) 그 이름을 붙여주었다. 첨엔 그냥 ‘가시콩알꽃’으로 불렀었다. 유난히 꽃이 작기 때문이었다. ‘콩알’만 하다. ‘그게 꽃이라니… 하하… 그게 꽃이라니…’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의 눈에 그것이 달려들어 왔다. 작은 의자를 놓고 가난한 베란다 화분들 사이에 끼어 앉아 차를 한 잔 마시려 할 즈음, 어느새 그것은 아주 커져 있었다. 허옇게 끼어서 급기야는 잎을 다 떨어지게 하는 ‘응에’도 끼여 있지 않았다. 대도 아주 실했다. 작디작은 ‘꽃 알’들이 하도 많이 피는 바람에 가시도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꽃분홍색이 공중으로 정신없이 퍼졌다. 나는 그동안 가시가 많을 뿐 아니라, 꽃도 보잘것없는 그것을 이 꽃밭, 가장 나쁜 자리로 밀쳐 놓아 두었었는데…. 나는 꽃에 미안하다, 미안하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가시금작화’야, 아마도 센트 아이브스의 ‘가시금작화’가 이랬을 거야라고 말하며 그 작은 꽃잎을 쓰다듬고 용서를 구했다. 그러고 있자니 그 꽃 가시금작화가 말하기 시작했다. ‘꽃은 상처예요. 나의 이 꽃들은 상처를 최대한도로 집중시킨 것이지요…. 알고 계셔요?’ 그러고 보니 다른 꽃들의 목소리도 가늘게 들려왔다. ‘맞아, 맞아, 맞고 말고…’라고 말이지요.
아일랜드계 영국 시인 예이츠는 말하자면 아일랜드의 실패와 식민에 의한 가난을 정신적 승리로 만들어 세계적인 문학의 꽃을 피운 사람이었다. 즉 예이츠의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에 억압을 당하는 경제적 실패와 가난에도 그 예술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실은 그들의 실패와 가난 때문에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하긴 이런 결핍의 생존학의 예는 쉬운 데서 찾아도 무수히 많다. 블루베리들 중에서도 농장에서 키운 것이 아닌 야생 블루베리가 특히 노화에 좋은 이유를 캐던 연구자들이 발견한 것은 야생 블루베리 속에는 안토시안이라는 물질이 많은 것이었고, 그 이유는 또한 그 산야의 척박한 기후와 토양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즉 야생 불루베리들은 그런 곳에서도 살아남으려고 안토시안을 많이 뽑아내는 것이었다. 가난했던 식민의 나라 아일랜드에 있어서도 이런 논리는 가능해진다. 눈부신 또 한 송이의 꽃,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로 연결되는 아일랜드의 문학예술은 실패와 가난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실패와 가난 때문에 이루어진 그 문화적 전통에 많이 빚지고 있는 것이다. 그 실패와 가난이 ‘상처의 꽃’을 활짝 피웠으며 그것은 아름다운, 문학의 가시 금작화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성공의 필수요소는 실패와 가난이라는 어찌 보면 참 해묵은 대답이 다시 나온다. 그러나 이 원리는 하고, 또 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 가난한 베란다 꽃밭의 ‘가시콩꽃’ 아니 ‘가시금작화’만 보아도.
생각은 더 확대 비약되는구나. 지금 아이들도 더 ‘고생’시켜라. 아이들만은 이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게….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아이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게 하는 것임을 어른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 나의 딸, 강희야 곧 태어날 ‘녹비’는 제발 ‘공주처럼’ 키우지 말아라. 그래야 어른이 되면 부유해지리라. 부유한 어른들이 있는 우리나라도 부유해지리라. 물질적인 가난함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채우게 해라. 상상력은 꼭 문학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아인슈타인도 상상력이 굉장했고, 빌 게이츠도 상상력이 굉장한 사람이었다. 상상력 넘치는 천재들이 사회의 곳곳에 우글거리게 하라. 어렸을 때 신동이 아니라, 어른이 되었을 때 천재가 되게 하라. 어린 시절은 마르크스식으로 말하면 토대이다. 그냥 토대가 되게 하라. 무한한 상상을 하게 하는 토대가. 아마도 실패와 가난 속에서 하는 상상은 성공과 부유함의 상상이겠지.
강은교 시인·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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