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앞에 물이 담긴 비커가 있죠? 그 안에 소금과 식초를 넣어볼까요?” 조교가 말하자 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소금 1스푼과 식초 20㎖를 넣고 조심스레 젓는다.
“거기에 10원짜리 동전을 반쯤 담갔다가 1분 정도 지나면 꺼내 보세요”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저마다 동전을 비커에 담근다.
1분 후 꺼낸 동전을 물로 잘 닦고 알루미늄 호일이 덮인 증발접시에 올려 놓는다. 베이킹 소다를 혼합한 물을 동전이 잠길 정도로 붓자 거무튀튀했던 동전이 구릿빛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이어 증발접시에 아연가루를 넣고 수산화나트륨 용액을 뿌려 가열하자 부글부글 끓더니 3∼4분 후엔 구릿빛 동전이 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와, 신기하다” 아이들의 탄성이 절로 나온다.
지난달 22일부터 10일간 서울대와 연세대 등 4개 대학에서는 학교 인근지역 중학교 1학년생 200여명을 대상으로 ‘서울과학교실’이 열렸다.
어릴 땐 많은 아이들이 과학에 상당한 호기심을 가졌다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암기식 교육에 지쳐 흥미를 잃어버리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교육 상황을 감안해 젊은 이공계 교수들이 의기투합하여 수학, 화학, 생물, 물리와 관련된 실험 위주의 ‘살아 있는 과학수업’을 고안해 냈다.
교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눈높이 교재’를 만들고 생활도구 등을 활용해 직접 강의한다. 실험은 매일매일 자원봉사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조교들의 도움을 받아 진행된다.
실험을 통한 과학교육은 글이나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해시키기가 쉽고 오랫동안 각인돼 교육 효과가 탁월하다.
또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높일 수 있고, 다소 까다로운 이론이나 증명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장점이 있다. 실험은 대학원생 언니 오빠들과 함께 편안한 분위기에서 하기 때문에 효과가 더 좋다.
과학교실에 참가한 박소영(14·중대부속중)양은 “고등학교 화학에서 배우는 분자와 원자 개념이 책을 볼 때는 전혀 감이 안 잡혔는데, 교수님이 사과를 이용해 설명해 주니까 확실히 이해됐다”며 “원래 과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번 실험수업을 통해 과학자의 꿈을 키우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과학교실에서 진행되는 실험들은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이해하기에는 까다로운 것들이 많다.
‘은색 동전 만들기’ 실험만 해도 구리로 된 동전을 아연 가루가 든 수산화나트륨 용액에 넣고 가열하면 아연과 수산화나트륨이 반응해 아연이 산화되는 금속 산화에 관한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고교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어서 중학생에게는 생소하다.
하지만 복잡한 화학식이 아닌 실생활에서 손쉽게 접하는 동전을 활용해 눈으로 산화 과정을 직접 확인하면 이해하기 쉬워진다. 이 실험을 통해 ‘은색 십원짜리 동전’을 하나씩 갖게 된 아이들은 이를 볼 때마다 실험의 기억을 떠올리게 돼 자연 복습 효과도 있다.
낙성중 성화진(14)군은 “책으로만 봤을 때는 원소기호 같은 것을 알지 못해 어려운 줄로만 알았는데 동전으로 실험하니까 하나도 어렵지 않더라”며 흥미로워했다.
실험조교 서윤미(서울대 박사과정)씨도 “어릴 때 했던 실험이 위대한 과학자로 이끄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면서 “가정이나 학교에서 간단한 실험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접하게 되면 과학에 대한 흥미는 물론 창의력도 키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경희 기자 sorimo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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