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최근 은행 간 기업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도 자체가 ‘껍데기’만 남았다는 평가다.
◆의미없는 주채권은행=23일 한 시중은행이 작성한 ‘2006년 주채무계열 선정 현황’에 따르면 금융감독당국이 꼽은 현대자동차 그룹 등 36개 주채무계열의 주거래은행은 ▲우리 13개 ▲산업 10개 ▲외환 5개 ▲하나·신한 각 3개 ▲국민 2개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작 주채무계열에 속한 기업 1849곳의 주거래은행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외환은행이 주거래인 현대차그룹은 146개 소속 기업이 개별적으로 다른 은행과 주거래 관계를 맺고 있다.
기아차 등 13개 기업은 산업은행과, 엠코 등 4개기업은 농협과, 위아 등 3개기업은 제일은행과, 종로학평 등 3개 기업이 신한은행과 주거래 관계를 맺고 있다.
삼성그룹의 주거래은행은 우리은행이다. 하지만 298개 소속 기업 중 삼성네트웍스(하나)와 삼성중공업(산업)의 ‘이탈’이 눈에 띈다. 마찬가지로 우리은행이 주거래인 LG그룹 가운데 LG마이크론·LG석유화학·LG스포츠·LG CNS·LG이노텍은 제일은행과 주거래 관계를 맺고 있다. LG텔레콤도 신한은행과 거래를 튼 상태다.
특히 주거래가 국민은행인 KT그룹은 ▲KTFT·KT링커스·싸이더스FNH(하나) ▲KTF·KT네트웍스(신한) ▲KTH(제일) ▲KTfm하우스(기업) 등으로 17개 계열사의 주거래은행이 나뉘어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간 기업금융 쟁탈전이 치열해지면서 은행과 기업 사이의 오랜 주거래 관계가 경쟁은행의 공격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있다”며 “은행 간 ‘뺏고 빼앗기’가 일상화하면서 자신의 주거래 기업조차 밝히길 꺼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CMS로 주거래 개념 붕괴=특히 최근 종합관리자금서비스(CMS)이 도입돼, 기업들로부터 인기를 끌자 주거래 은행은 그 개념마저 모호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CMS는 쉽게 말해 은행이 가상계좌를 통해 기업의 모든 돈 관리를 대신해 주는 ‘사이버 지점’이다.
GS그룹의 ‘공식적인’ 주채권은행은 하나은행. 하지만 GS그룹 소속 72개 기업 중 핵심으로 꼽히는 GS칼텍스·GS홈쇼핑·GS건설 등은 우리은행과 주거래 관계를 맺고 있다. 하나은행이 GS그룹의 지주회사인 GS홀딩스의 주채권은행이다 보니 그룹 전체를 맡게 됐을 뿐 내실은 우리은행이 챙기고 있는 셈이다.
그럼 우리은행이 ‘승자’일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예컨대 우리은행이 빼앗아 온 GS홈쇼핑의 경우 2005년 5월 국민은행의 CMS 고객이 됐다. 장성규 국민은행 CMS팀장은 “CMS로 물품 결제와 급여 이체 등 기업의 입·출금 내역을 모두 관리해 주면 다양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우리은행이 대출 이자만을 얻는 데 비춰 보면 CMS야말로 ‘알짜배기’ 장사”라고 말했다.
2004년 10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CMS를 선보인 국민은행은 현재 CJ·롯데쇼핑·현대산업개발·현대백화점·르노삼성·두산중공업 등 814개 기업에 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CMS 시장은 국민·기업·우리은행이 ‘3파전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후발주자들도 “이러다간 ‘단골 기업’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속속 CMS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황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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