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주민투표 89.5%의 찬성률로 국책사업인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을 유치한 뒤 울려퍼졌던 환호성은 1년이 지난 지금 자취를 감췄고 오히려 갈등과 혼란이 인구 38만명의 천년고도 경주를 갈가리 찢고 있다. 방폐장 유치 지원사업의 하나로 받게 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본사 이전라는 큰 선물은 독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방폐장 건설지인 감포·양남·양북면 등 동경주 주민들은 28일 4일째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월성원자력발전소 인근인 이 지역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산불이 잇따라 발생해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양분된 경주=동경주 주민들은 이날 감포읍과 양북면 일대에서 폐타이어를 태우고 경운기 등을 동원해 국도를 점거한 채 4일째 격렬한 시위를 계속했다. 이에 앞서 주민 500여명은 27일 오후 시위를 벌인 뒤 감포읍사무소로 진입하려다 경찰과 충돌해 10여명이 부상했다. 이런 가운데 방화로 보이는 산불이 밤마다 잇따라 발생해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28일 오전 양남면 석읍리 야산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산불이 발생해 활엽수 5000여 그루를 태우고 6시간 만에 진화됐다.
그러나 한수원을 경주시내로 유치하려는 도심권 주민들도 산업자원부와 한수원을 방문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경주시내 주민대표 40여명은 27일 상경해 “한수원 본사를 시내 도심권으로 이전하고 이를 하루속히 발표하라”고 주장했다.
◆언제, 어디로 결정되나=한수원은 당초 본사 이전 예정부지에 대해 26∼27일 발표할 예정였으나 이전지를 양북면 지역으로 줄곧 주장해온 방폐장 인근 동경주 주민들이 경주시가 시내권을 후보지로 추천한 데 대해 강력 반발하면서 최종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수원은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특별법 제17조와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18조에 따라 본사 이전지 선정 등에 관한 계획을 2007년 1월1일까지 확정하고 2010년 10월 말까지 이전을 완료해야 한다.
한수원 측은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과격해지는 등 갈등이 조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입지를 발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수원 측은 “우리가 단독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니며, 관련 부처와 최종 협의를 거쳐 입지가 확정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한수원 측은 “경주시와 동경주 주민들이 추천한 양북·감포 등 4개 지역은 본사 부지로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양남면은 경주시가 반대한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경주시가 최근 최종 후보지로 시내권을 추천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이전부지 발표는 다소 지연되고 있으나 일단 시내권이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경주 주민들은 방폐장이라는 핵쓰레기만 떠안고 한수원 본사를 시내권으로 빼앗기게 되면 방폐장 유치 백지화와 신월성원전 1·2호기 건설을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최종 결정에 작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주시의 한 관계자는 “백상승 경주시장은 한수원과 정부 측에 날로 과격해지는 동경주 주민들의 반발을 무마할 인센티브를 마련해 빨리 입지를 결정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경주=장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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