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유지나의 필름 포커스]''랑페르''

관련이슈 유지나의 필름 포커스

입력 : 2006-12-08 12:24:00 수정 : 2006-12-08 12:24:00

인쇄 메일 url 공유 - +

변해버린 사랑에 대한 집착이 빚어내는 내면의 지옥 풍경 세상은 사랑의 찬가를 유포하지만, 한 상대에게 집중하는 일대일 사랑은 빛과 그림자,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만드는 모순을 낳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랑페르’(지옥이란 뜻의 프랑스어)는 변해버린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못하는 과거의 사랑, 혹은 이상으로서의 사랑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내는 내면의 지옥 풍경을 펼쳐 보인다.
‘블루’ ‘레드’ ‘화이트’ 세 가지 색을 통해 인간의 근본적인 가치를 탐구한 크시슈토프 키에슬롭스키의 유작인 ‘신곡’ 시리즈―‘지옥편’ 시나리오를 영화화한 작품답게 다니스 타노비치 감독은 영화를 삼인삼색으로 그려낸다. 아울러 타노비치는 키에슬롭스키 영화에 나오는 사소한 일상에 대한 통찰력 넘치는 이미지를 재현하며 오마주를 보낸다.
둥지에서 다른 알을 밀어내는 뻐꾸기의 부화과정을 다큐적으로 묘사한 의미심장한 장면으로 열려진 영화는 각자 끔찍한 사랑을 경험하는 세 자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짜나간다. 빨강색으로 표현되는 큰 딸 소피(에마뉘엘 베아르)는 겉으로 보면 두 아이와 남편을 가진 안락한 중산층 전업주부이지만, 남편의 외도를 발견하면서 파멸되어 간다.
침잠하는 푸른색으로 묘사되는 둘째 셀린(카랭 비야)은 모범적이지만 폐쇄적인 삶을 사는 독신이다. 그녀는 주위를 맴도는 세바스티앙을 만나 어렵게 연애할 마음을 먹지만 그것이 오해임이 드러나면서 절망한다. 그 대신 세바스티앙으로부터 가족의 비밀을 풀게 되는 열쇠를 얻는다. 초록색으로 묘사되는 셋째 안(마리 질랭)은 큰 언니와 정반대의 입장이다. 지도교수인 유부남과 한때의 사랑에 집착하면서, 헤어지려는 그로부터 느끼는 배신감으로 자멸해간다.
한때의 열정적 사랑과 깨어진 사랑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 없는 절망감. 그리하여 마음 속에 자신을 불살라버릴 정도로 분노의 불을 지피는 이들은 영화 속에 언급되는 복수의 화신 ‘메디아’의 현대적 변형이다.
어머니(카롤 부케) 역시 이런 딸들의 지옥 같은 사랑을 일찍이 경험한 또 다른 메디아이다. 오해로 인한 가족의 비밀과 비극이 밝혀진다고 해도 후회라는 감정을 거부하는 완강한 어머니 역을 무표정한 카리스마로 담아내는 캐롤 부케의 노역 변신은 놀랍다.
본드걸 출신으로 ‘내겐 너무 예쁜 당신’에서 완벽한 미의 표상으로 나왔던 그녀이기에 더욱 그렇다. 빨강으로 채색된 부엌에서 남편을 상대로 광적인 분노를 표출하는 에마뉘엘 베아르도 기존의 에로틱 이미지를 넘어 강렬한 내면 연기의 에너지를 폭발시킨다. 이렇듯 미모의 배우들을 파격적으로 변신시켜 낸 타노비치 감독은 강렬한 색채 감각의 미장센과 신선한 유머 감각을 통해 마치 남의 둥지에서 살아남는 뻐꾸기의 잔인한 생존방식을 보는 경이로운 시선으로 끔찍한 마음의 풍경을 관찰하는 독특한 연출력을 품격있게 드러낸다.
동국대 교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앳하트 서현 '여신 미모'
  • 앳하트 서현 '여신 미모'
  • 엄정화 '반가운 인사'
  • 이엘 '완벽한 미모'
  • 조여정 ‘아름다운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