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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여성]여자의 유혹에 무너진 남자의 비참함

입력 : 2006-12-01 18:51:00 수정 : 2006-12-01 18: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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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 作―마라의 죽음 절망의 화가, 죽음의 화가, 공포의 화가….
천재 화가 뭉크 앞에 붙는 수식어는 암울한 동시에 그의 작품세계를 집약적으로 나타낸다. 그의 그림은 삶과 죽음, 사랑과 관능, 공포와 우수 등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강렬한 색채를 통해 극한의 인간 내면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 또한 공감토록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마력의 원천은 그의 연애사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첫사랑은 보헤미안 기질을 지닌 세 살 연상의 군의관 부인이었다. 그녀와의 사랑은 6년 후 뭉크 스스로 그 실체가 욕정이었음을 깨달으면서 종지부를 찍는다.
그 후 1892년 베를린에서 개인전을 열었지만 비평가들의 거센 비난으로 전시가 중단되는 불운을 겪게 된다.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한 뭉크는 예술가들이 드나들던 술집에서 어릴 적 친구였던 다그니 율을 만나 위로를 얻는다.
그를 충만케 했던 이 두 번째 사랑은 그의 최대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생의 프리즈’ 연작을 탄생시킨다. 하지만 다그니 율은 아름다운 용모와 세련된 화술, 최고의 지성으로 많은 남성들의 구애를 받던 아가씨였다. 곧 실연을 당한 뭉크는 또 다시 죽음의 공포와 병마, 고독과 싸우면서 방황하게 된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라르슨이라는 부잣집 여성에 의해 그는 더욱 황폐해진다. 뭉크의 재능을 흠모하던 그녀는 그에게 결혼을 독촉했다. 보헤미안적 자유연애주의자인 뭉크는 이를 거부했고, 라르슨은 자신이 중병에 걸렸다며 뭉크를 병실로 불러 허위 자살 기도까지 벌이게 된다. 이때의 오발 사고로 뭉크는 좌측 넷째 손가락을 잃었다.
뭉크는 ‘마라의 죽음’에 이때의 심경을 담았다. 침대에 누워 피 흘리는 남자는 뭉크 자신이며 아름답고 풍만한 육체로 우뚝 선 그녀는 타락 천사인 사탄, 라르슨이다. 이 그림은 프랑스혁명 당시 3거두 중의 한 명인 마라 암살사건에서 소재를 차용했다. 하지만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이 성스럽고 거룩한 반면 뭉크의 그림은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여자의 유혹에 무너져 죽음을 당한 남자, 남자를 살해하고도 너무나 무표정한 여인의 모습이 뭉크의 심연에 내재한 비참함을 처절하게 담고 있다.
일찍이 어머니와 누이를 결핵으로 잃어 모성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뭉크는 살아 있는 내내 여성에 의해 많은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은 뭉크 스스로 바라던 바이기도 했다.
“나는 숨 쉬고 느끼고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사람, 즉 살아 있는 사람들을 그릴 것이다. 사람들은 이 작업의 신성함을 이해하고 교회에 갈 때처럼 모자를 벗을 것이다.”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과 배신에 대한 두려움을 예술로 승화한 뭉크의 말이다.
삶은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라 했다.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살기 일쑤지만, 뭉크와 같은 표현주의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가끔이나마 이를 깨닫는다. 그리고 이는 다시 삶을 열심히,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런 점에서, 뭉크의 여인들은 개인의 삶에는 고통의 정수일지라도 만인의 삶에는 더없는 가치를 선물한 이들이 아닐까 싶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www.brea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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