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화이러우(懷柔)구에 있는 베이징국가법관학원에는 최근 31개 성·시·자치구의 법원을 이끄는 주요 법관 6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10월24일부터 10일 동안 내년 1월1일부터 바뀌는 사형 제도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사형 제도와 관련해 건국 이후 최대 변화가 일고 있다. 과거 공산혁명 이후 사회주의 건설 과정은 물론이고 개혁·개방 이후에도 사회 혼란을 막기 위해 중벌 제도를 유지해왔다. 3만위안(약 360만원) 이상의 금품을 훔친 절도범에게 사형이 선고되기까지 한다. 각 지방에 있는 중급인민법원에서 사형을 선고하면 곧바로 형을 집행해왔다. 그러나 중벌주의의 핵심인 사형 제도가 내년 1월1일부터 크게 바뀐다. 사형은 반드시 2심을 거쳐 결정하도록 하고,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법원의 심사·승인을 받도록 했다.
◆‘사형 대국’이 변한다=중국이 ‘사형 대국’으로 불리는 이유는 사형 선고로 죽어가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루 3명꼴로 사형을 당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가 8월 발표한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사형당한 사람은 1060명에 달했다. 이는 그나마 과거보다 훨씬 줄어든 수치로, 2004년에는 2784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90년대에는 연간 3000명 이상이 사형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전 세계 사형 건수는 1526건. 중국에서 집행된 건수가 전 세계의 69.4%를 차지한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앰네스티 등 국제 인권단체들은 중국을 ‘사형을 남발하는 나라’ ‘인권이 무시되는 나라’로 지목하며 이 같은 상황을 바꿀 것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내년 1월1일부터 중국 사형 제도에 일어날 가장 큰 변화는 ‘즉시 사형’ 선고가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시 사형’ 선고는 1심인 중급인민법원에서 죄질이 무거운 범법자에게 사형이 선고되면 당일 형이 집행된다. 그러나 지난 9월부터 모든 사형을 2심을 원칙으로 한 데 이어 내년 초부터는 사형 선고와 집행의 심사·승인권을 최고인민법원에 넘겼다. 이에 따라 사형은 최종적으로 최고인민법원에서 결정된다.
최고인민법원 류자선(劉家琛) 대법관은 “최고인민법원이 사형을 다시 심의하면 사형 제도를 신중하게 운용,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는 사회 안정에 이바지하고 국제인권 문제에서도 중국의 이미지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1979년 개정된 형법에 따라 모든 사형은 총살형으로 집행된다. 1996년 형사법 개정으로 총살형과 함께 주사 방식으로 형을 집행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 총살형이다.
◆변하지 않는 중벌주의=엄한 형벌은 중국 형사법의 기둥을 이룬다. 샤오양(肖揚) 최고인민법원장의 발언에서도 이 같은 의식이 배어난다. 그는 600여명의 중국 주요 법관이 모인 자리에서 “중죄인은 증거를 명확히 하고 법에 따라 사형을 집행하되 봐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이 같은 생각 때문인지 다른 나라에서는 해당되지 않는 범죄도 가차 없이 사형이 선고된다.
사형 기준이 엄하게 적용되는 범죄는 마약, 절도, 부정부패, 성폭행 등이다. 이들 범죄가 사회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판단에서다. 마약의 경우 특히 엄하다. 150여년 전 영국이 중국에 아편을 팔면서 사회가 붕괴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헤로인은 50g이상 지니고 있으면 최소 15년 이상의 징역이나 사형에 처해진다. 10∼50g를 소지하면 7∼15년의 징역이 선고된다. 아편은 1㎏, 대마유는 5㎏, 대마초는 150㎏만 지니고 있어도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판매에 관여했으면 대부분 사형을 선고받는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관료는 금액이 500만위안이 넘거나 다른 중대한 범죄가 겹친 경우 사형에 처한다. 절도는 훔친 금품이 3만위안 이상이면 10년 이상 징역이나 무기징역, 사형에 처해진다. 특히 금융기관을 도둑질했거나 진귀한 물품을 훔쳤을 때는 예외 없이 사형이 선고된다. 성폭행은 ▲부녀자와 아동 간음의 정도가 심하거나 ▲여러 부녀자와 아동을 성폭행하거나 ▲공공장소에서 부녀자를 성폭행하거나 ▲2인 이상이 집단성폭행하거나 ▲성폭행 과정에서 중상 또는 사망하게 한 경우 모두 사형을 선고받는다. 강도는 강탈 금액이 5000위안 이상이거나 금융기관 또는 군경을 대상으로 한 경우 등이 사형에 해당한다.
베이징=강호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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