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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베트남 결혼 이주여성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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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08-26 13:46:00 수정 : 2006-08-26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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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짧은 휴가기간 동안 결혼 이주 여성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 현장 몇 곳을 다녀보았다. 그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의 책임자로서 현장을 살펴보고 실태를 파악하고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시간과 기회가 없었기에 차일피일 미루었다가 오래 묵힌 숙제 푸는 심정으로 다녀 보았다.
그녀들은 50여 년을 이 땅에 살아온 내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농촌, 혹은 어촌의 깊디깊은 곳에도 살고 있었다. 경주 바닷가 어느 마을에는 베트남에서 온 30여 명의 앳된 여성들이 산다기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몇 년째 그녀들에게 한국어와 한국요리, 한국문화를 가르쳐온 마을 부녀회장을 만나 어려움과 노고를 들을 수 있었다.
부녀회장이 보여 준 사진 속의 모습은 정말 어리고 여린 이국의 여성들이었다. 10여 명 남짓의 그 사진 속에는 임신을 한 여성도 여럿 있었다. 베트남에서 결혼 전의 여성들은 순백의 아오자이를 입는다던데 사진 속의 그녀들은 그런 옷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여성들이었다. 이 머나먼 나라, 말 설고 물 선 땅, 산골마을에 낯선 남편을 따라 아오자이를 벗고 결혼을 택한 그녀들의 입장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안쓰러운 마음은 오래 남았다.
더구나 그녀들의 남편 중에는 나이가 다소 많은 것은 흠이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절대빈곤자도 꽤 있어 남의 일이라 여길 수가 없다는 부녀회장의 걱정은 마치 친정어머니의 마음인 듯하였다. 그래서 사재를 털어 그녀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고 그 아이들까지 돌보는 자원봉사를 기꺼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제결혼은 외국 어느 나라보다도 많지 않았다. 혈연을 중시하는 가부장적 관습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짝을 찾지 못하는 농촌 총각들이 급증하면서 그들의 미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여성, 주로 동남아 여성과의 국제결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다.
당연히 그들 가족은 언어 소통,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 2세들의 교육 및 사회적응 문제 등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가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교류를 통해 사랑이 싹터 국경을 초월해 이루어진 국제결혼이 아니라 결혼을 전제로 거래를 통해 성사된, 말 그대로 매매혼에 가까운 결혼이어서 더욱 문제다.
현장에서 보니 결혼 이주여성들은 인격적 개인으로 대우받고 있다기보다 그녀들을 건강한 출산력이나 농촌의 부족한 인력을 무임금으로 때우는 노동력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들에게 가장 큰 당면 문제는 ‘언어 소통’이다. 현재 여성부와 문화부에서 결혼 이주여성 지원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으나, 특히 효율적인 한국어 보급과 교육 지원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보급 체계 구축, 교사 양성, 교재 개발 등 통합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 지금 이들에 대한 일선의 교육 주체는 대학, 지자체, 문화원, 여성개발연구원, 시민단체, 개인 등 너무나 다양하다. 여기에서 오는 교육의 목표와 방법 등 혼선과 정부에서 지원하는 재정의 부실 집행 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정부 부처 간의 업무 조정과 협의를 통해 통합적 지원 계획의 방향과 방법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주민 여성 혼자 먼 거리의 출타를 허용하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서 지원센터나 시·군 문화원에서 집단적으로 교육을 하는 것은 큰 효과를 얻어내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 현장의 한결같은 목소리였다.
짧은 휴가 동안 함께했던 순백의 베트남 결혼 이주여성들의 눈에 송골송골 맺힌 고향의 그리움에 대한 눈물이 오랫동안 내 맘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이상규 국립국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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