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맣고 깡마른 체구에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소래포구 곳곳을 다니며 참견 바쁜 최순분(78) 할머니. 소래포구 1세대인 최 할머니는 이곳에선 순길 할머니로 통한다. 순길호라는 어선을 운영하기에 좌판 이름도 순길호다. 터줏대감답게 좌판도 포구 초입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경기도 시흥이 고향인 순길 할머니는 시집온 22살 때부터 배를 타기 시작했다. 아들 정광철씨가 가업을 이어오다 35년 전 안산 반월공단이 생기면서 시흥에서 소래포구로 배 11척과 함께 이주했다. “처음에 큰 배로 포구 인근에서 고기를 ‘싹쓸이’하다시피 하니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려고 안달이었지.”
텃새의 이유는 간단하다. 주로 돼지를 키워 생활하고 기껏 2∼3t짜리 소형 어선으로 연안에서 잡고기를 잡던 마을 사람들이 5t 남짓한 순길호의 만선에 배 아팠던 것. 게다가 6·25 피란민이 대부분인 소래포구 1세대와 달리 순길 할머니는 이곳 인근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 “그때야 힘들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지만 이젠 모두 저세상 사람들이야. 지금은 그 자식들이 장사를 하는 거지.”
순길 할머니가 소래포구에 들어왔을 때 선주래야 15명 남짓에 배는 30∼40척이었다. 반월공단과 시화호 등이 생겨 판로가 여의치 않자 인근에서 어선들이 몰려들어 한때 300여척이나 됐다. 1980년대 후반에는 소형 어선 100여척이 강제로 폐업됐다. 연근해 어업에 적합지 않다는 안전 상의 이유였다. 선주들은 심기일전해 다시 큰 배를 사들였고, 그것을 계기로 소래포구 최고의 활황기를 맞게 됐다. 게다가 15년 전에 생긴 수협, 언론 보도 등으로 소래포구는 유명 관광지가 됐다. 어선은 현재 250척 정도다.
지금은 꽃게도 유명하지만 소래포구의 주 종목은 젓갈용 생새우였다. “1985년쯤엔 생새우를 사려는 외지인이 하루에 관광버스로 100대씩 오기도 했었지.” 요즘엔 김장하는 집도 줄어들어 예전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김장철이 되면 익숙한 얼굴들이 찾아온단다. 시세는 4㎏에 1만5000원에서 2만원 정도다. 단골들에겐 좀 싸게 주는 걸까. “더 주고 덜 주는 게 어디 있어? 그냥 양심대로 파는 거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말린 새우를 사러온 손님이 ‘예쁜’ 소리를 하자 한두 움큼이나 더 봉지에 집어넣는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들어와 활황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소래포구의 모든 것을 꿰차고 있는 순길 할머니는 요즘 포구 모습도 영 마음에 안 든다. “‘오만 잡것’들이 다 들어와서 물을 흐려놨어.” 꽃게든 새우든 찾는 이가 많아 돈이 된다는 소리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상인 중 몇몇 사람 이야기다. “양심대로만 팔면 누가 뭐라고 하나. 막 죽은 거라면 모를까, 죽은 지 며칠 지난 꽃게를 섞어서 파는 것들이 있다니까.”
꽃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35년 전 꽃게 시세는 ㎏당 2000∼3000원이었지만 지금은 상급이 3만5000∼4만원 정도니 열 배는 뛰었다. 수협이 생기기 전까지 공매 방식이 아니라 입찰 방식으로 매매됐다. 에누리라는 게 사라진 것이다. “그날그날 나오는 ‘깡’ 시세에 따른 거니까 깎을 생각 말아. 이문 남겨봐야 500∼1000원이야.” 꽃게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만 잘 살피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포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귀찮은 듯 질문에 답하던 순길 할머니는 딸에게 좌판을 맡긴 뒤 생새우를 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말려서 팔기 위해서다. 가는 길에도 외지에서 찾아온 사람들과 상인들에게 한마디씩 던진다. “병어는 저 안쪽으로 들어가야 살 수 있지”, “꽃게는 깡에 넣어버리지 귀찮게 왜 직접 팔아. 돈 얼마나 된다고.”
입만 벌리면 험악한 언사가 줄줄이 터져 나오지만 주위 상인 누구 하나 순길 할머니에게 인상을 찡그리지 않는다. 멀어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포구 상인 누군가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소래포구의 어른으로 바른말만 하시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요. 알고 보면 속정은 또 얼마나 깊은데요.”
글 정재영, 사진 김창길 기자 sisleyj@segye.com
입만 즐거우면 뭐해?
''걸어서 5분'' 해양생태공원 ''차로 10분'' 인천대공원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에게 소래 포구만으론 부족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돌아가는 길에 인근 해양생태공원과 인천대공원을 들러 보자.
서래 포구에서 걸어서 5분이면 풍림아파트 맞은편에 해양생태공원이 있다. 갈대가 펼쳐진 갯벌에 옛 소금창고와 염전이 복원돼 있다. 갈대 숲에서 벌노랭이 등 각종 야생 식생물을 관찰할 수 있고, 갯벌 체험장에서는 방게와 논게 등을 볼 수 있다. 1996년 이후 버려졌던 염전에서는 다시 옛날 방식으로 소금을 만들고 있으며, 수차(水車)도 복원돼 있다. 연못 주변에는 통나무 다리와 숲이 만들어져 산책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2008년이면 청소년수련관, 수족관 등 모든 시설 조성 공사가 마무리된다.
인천대공원은 소래포구에서 인천 남동구청 방면으로 승용차로 10분 정도 걸린다. 200여점의 기암괴석이 전시된 수석공원과 식물원·장미원·조각공원·인공호수 등이 조성돼 있다. 10㎞에 이르는 산책로가 나 있고, 중간에는 인공암벽도 설치돼 있다. 여름철에는 물썰매장과 어린이 수영장이 운영되며, 사계절 썰매장에는 슬로프 3면이 있다. 농구장 배구장 궁도장 게이트볼장 배드민턴장 등의 운동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잔디광장에 만들어진 야외음악당은 3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 문의는 인천시 동부공원 사업소(032-440-4960).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그래도 맛 여행이 최고!
꽃게탕도 매운탕도 양념 잘하는 집이 대표 선수
꽃게야 알이 통통하게 들어 찬 요즘이 제철이라지만, 다른 생선들은 어떨까.
포구 상인들에게 물었더니 대답이 이구동성이다. “알 낳으려는 지금이 가장 맛있지.” 대개 먼 바다에서 알을 낳기 위해 포구 가까이 들어오다 잡힌 녀석들이란다. 반면 산란기 앞뒤 한 달에 잡힌 생선은 맛이 없어 뱃사람들조차 이 시기를 금어기로 친다. 힘들여 잡아봤자 맛이 떨어져 제값 받기 어렵기 때문. 팔팔하게 살아 있고 알이 뱄는지 뒤집어보고 꽃게나 횟감을 사긴 샀다. 포구에서 맛나게 요리하는 집은 어디가 좋을까. 찜이야 거기서 거기지만, 꽃게탕은 물론 회를 먹고 나서 끓여 먹는 매운탕도 양념을 잘하는 집이 대표 선수. 어시장 좌판 상인들이 꼽는 양념 잘하는 집 몇 곳을 소개한다. 냄비 크기별로 2∼3인용 탕을 끓여주는데 7000원을 받는다. 양념집들은 대개 소래포구 앞까지 차가 들어오던 시기에는 횟집으로 운영하다 길이 좁아지자 양념집으로 업종을 바꾼 곳. 20여년 전 일식집으로 출발한 대하횟집은 10년 전 양념집 ‘MBC’(032-442-9238)를 따로 열었다.
매운탕과 꽃게탕이 주종목으로, 횟감이나 꽃게를 사오면 맛나게 요리해 준다. 21년 된 ‘대복횟집’(032-441-6092)도 원래는 횟집이었던 곳. 다른 양념집과 달리 바지락을 양념으로 넣어 개운하고, 2∼3인용 탕을 끓여주는 데 8000원을 받는다. 할아버지가 소래포구 1세대인 ‘소문난 매운탕’(032-441-6419)의 사장 서경훈(42)씨는 15년 전 아버지가 연 양념집을 이어받았다.
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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